사랑과 책임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지 마.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영원히 책임을 지는 거야.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에서 주인공 요제프 K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고소를 당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 고소를 당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느 때처럼 사랑을 하고 먹고 마시며 일상생활을 영위해 간다.
우리들의 삶이 이렇지 않는가? 우리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고소를 당했다. 항상 뭔가 불안하다.
우리는 제대로 변론도 하지 못한 채 언젠가는 어디론가 끌려가 죽을 것이다. 마지막에 K처럼 짧게 한마디를 할 것이다.
“개처럼 죽어가는군!”
우리는 결국에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먹고 마시고 사랑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이러한 삶을 ‘부조리(不條理)’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을 잘 생각해 보면, 전혀 조리(條理)에 맞지 않지 않는가?
사전을 찾아보면, 조리의 뜻이 ‘말이나 일 따위가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라고 되어 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들에 명확한 답이 주어지는가?
아무도 답해 주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해? 우리는 절벽 끝에 서게 된다. 이것이 부조리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근데 우리가 왜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만일 이런 질문들을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하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그들은 픽 웃으며 말할 것이다. “뭐야?” 그리고는 다시 신나게 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들은 사는 게 신나지 않는 어른들에게나 맞는 질문인 것이다. 결국 이런 질문들은 우울한 어른들의 독백인 것이다.
어른들도 신나게 놀게 되면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이런 질문들에 시달렸다.
그러다 글을 쓰고 인문학을 공부하며 깨달았다. ‘쓸데없는 잡념들이야!’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했다.
‘삶은 의미가 아니라 살아있음’이다. 나는 ‘살아있음의 환희’를 알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가 헛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인간 세상의 모습을 설명해주는 단어다.
그럼 참혹한 2차 세계대전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부조리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삶이 폐허가 되니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삶이 폐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지 마.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영원히 책임을 지는 거야.”
카뮈는 인생의 부조리를 논하는 산문 ‘시지프 신화’를 쓴 후, 소설 ‘페스트’를 발표한다.
페스트는 페스트가 유행하는 작은 도시에서 모든 시민들이 하나의 마음이 되어 도시를 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카프카의 K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서로를 길들이고 길들인 것에 책임을 지게 되면 우리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갑자기 고소가 취하되고, 고소인들은 우리와 친구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나날이 축제가 될 것이다.
여일한 삶이 지루해
예쁜 얼굴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 황인숙, <다른 삶> 부분
사랑을 잃은 사람들은 여일한 삶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삶을 꿈 꾼다. ‘예쁜 얼굴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러다 아예 삶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나서야 여일한 삶을 꿈 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