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by 고석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아주 오래전, 교직에 있을 때였다. 술자리에서 한 교사가 자신이 겪은 끔찍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 교육청에서 감사를 나왔단다. 학교는 비상사태에 들어가고, 교사들은 시험 답안지들을 다시 살펴보았단다.


‘헉!’ 채점을 잘못한 것이 나왔단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답안지의 성적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성적 처리를 다시 해야 한다.


그 학생은 이미 졸업을 했는데, 답안지를 고치고, 성적표를 고치고, 생활기록부를 고치고... .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답안지의 성적에 맞게 오답 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나갔다고 한다. 답안지를 바로 잡는다고 해서, 그 학생에게 어떤 이익이나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답안지를 바로잡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 교사는 왕따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그 교사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도 불의(不義)에 가담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조직의 일원이 되면, 조직에 피해를 줄 수가 없다.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불문율(不文律)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악인이 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이다.


한나 아렌트는 어린 시절 유대인과 잘 어울렸던 선량하고 평범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하여 끝없는 의문을 가졌다.


아이히만은 공개재판에서 “자기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그는 근면 성실한 공무원이었다. 어쩌다 유대인 학살을 하게 된 건, ‘불운’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이 시대에 벌어지는 온갖 ‘조직적인 불의’와 무관할까?


그렇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이 시대의 불의에 무관할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악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무가 있다. 이 시대의 불의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民)이 주인(主)이 되어야 하는 사회 제도다. 우리는 주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조직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서로를 소중하게 길들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단독자는 자신의 삶, 주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단독자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꿋꿋이 가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기리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내 믿는 바를 그대 또한 믿게 되리라

내게 속하는 모든 원자(原子)가 그대에게도 속하기 때문


-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1> 부분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의 마음 하나하나를 아주 소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시인처럼 노래하게 될 것이다. ‘내 믿는 바를 그대 또한 믿게 되리라’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이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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