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작은 사회’를 위하여

by 고석근

‘아름다운 작은 사회’를 위하여


여우가 말했다.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어린 왕자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여우가 대답했다.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 나는 곁눈질로 너를 볼 텐데. 너는 말을 하지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언어로 소통을 한다. 언어를 가졌기에 커다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게 되어 지구의 패자가 되었다.

그런데, 언어를 쓰게 되면서 인간은 ‘허상’ 속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말을 잘 보자.


‘가을이 간다’ 이런 말을 쓰다 보면, 가을이라는 게 있어, 가을이 오고 가는 것 같다.


하지만 가을이 어디에 있는가? 가을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 이름에 불과한 것이 자꾸 말하다 보면, 가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생각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을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우리가 커다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작은 사회는 가능할 것이다. 노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사회, 소국과민의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웃나라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닭이 울고 개가 짖어도 상관하지 않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는다.’


이러한 작은 사회에서는 서로가 ‘시(詩)적 언어’를 써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시는 자신만의 언어다.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한 말이다. 서로를 훤히 아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시적 언어를 써도 생각을 주고받는데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가을이 간다’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을 쓰지 않는다.


실제로 언어학자들은 원시인들은 시적 언어를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시적 언어를 쓰면서 살아가게 되면, 생각이 허상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찰나의 언어를 쓰면서 살아가기에 생각도 찰나가 된다. 잡생각이 머리에서 와글거리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머리가 복잡한 것은, 현대인이 쓰는 언어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머리로 살아가면 사는 게 신나지 않게 된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지가 훤히 보인다.

우리가 쓰는 명사들, 꽃, 번개, 비, 강물, 산... 다 이름에 불과하다. 실체는 없다.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명사들을 일상에서 시적인 언어로 쓰게 되면, 이 세상은 교향악이 되고, 춤이 된다.


아이들이 쓰는 언어를 잘 살펴보면, 거의 다 시적 언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은 언제나 율동 속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른이 되면, 의사소통을 위하여 산문적인 언어를 쓰게 된다. 생각이 굳어지고 삶 전체가 딱딱해진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딱딱한 생각들이 풀어지게 된다. 생각이 풀어질 때, 나의 삶 전체가 물처럼 공기처럼 흐르게 된다.


글을 쓰면서 딱딱한 세상을 겨우 견딘다. 이 세상 전체가 바람처럼 흘러 다니려면, 아주 작은 사회들로 나누어져야 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작은 사회를 이루고 산 적이 있다. 아메리카 지역에 살았던 인디언들이다.


프랑스의 정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그의 저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아름다운 작은 사회’를 보여준다.


그 사회에서는 최고의 지도자 부족장에게 권력이 없다. 그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잉여를 남기지 않는다. 말을 잘한다. 관대하다.’ 최고의 지도자에게 쓰고 남는 잉여가 있으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


잉여는 더 많은 잉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다. 사람은 물질을 보면, 없는 욕심도 생겨난다.


최고 지도자에게는 아예 욕심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부족원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항상 노력하게 된다.


부족원들 간에 다툼이 있으면 그가 화해를 시켜야 한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는 말을 잘하고 관대해야 한다.

권력 없는 부족장, 우리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머니는 사랑으로 가정을 잘 다스리지 않는가?


이러한 인디언들의 아름다운 작은 사회는 현대 인류가 앞으로 가야 할 오래된 미래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 준다. “너는 말을 하지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


사람은 온몸으로 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다.


시적인 말을 쓸 때 우리는 서로가 오해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 요즘 지역 곳곳에 ‘마을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여는 시원(始原)들이다. 나는 인디언들처럼, 석기 시대의 원시인들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우리의 후손들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 파블로 네루다, <침묵 속에서> 부분



인류 전체가 단 일초만이라도 침묵한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인간과 동식물, 사물들이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언뜻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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