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은 시대
나는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품고 다니던 내 그림 제1호를 꺼내 그를 시험해 보곤 했다. 그가 정말 이해력이 있는 사람인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늘 이런 대답이었다. “모자로구먼.”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로또 복권 3등으로 당첨되어 수백만 원이 생겼다며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분을 보았다.
그는 진정으로 신을 믿고 있는 걸까? 그가 로또 3등이 될 때 다른 사람은 떨어져야 한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채워주는 신이 정말 신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나는 그가 믿는 신은 ‘우상(偶像)’이라고 생각한다.
우상,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신의 형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신에 대한 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신이 아니다. 신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 본 사람만이 신을 알고 믿을 수 있다.
이러한 깊은 깨달음이 오기 전에 믿는 신은 우상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모자 그림을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보여주었다.
그는 그들이 정말 이해력이 있는 사람인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늘 이런 대답이었다. “모자로구먼.”
왜 그들의 눈에는 보아뱀의 속이 보이지 않고, 보아뱀의 형상만 보일까? 과학의 눈으로 그 그림을 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사고의 틀은 과학이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만 다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과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을 배운다. 이렇게 과학으로 무장한 현대인이 보이지 않는 신을 믿을 수 있을까?
현대인의 신은 우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순교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종교의 신도들 중에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로또 3등 된 그분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을 고수할까?
오래전에 어디서 읽은 글이다. 한 선비가 길을 가다 정자에서 쉬고 있는데, 노부부가 길을 가다 쉬러 오더란다.
그 노부부는 며느리가 제대로 효도를 하지 않아 불공을 드리러 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 선비는 노부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며느님은 관세음보살님입니다. 항상 며느님을 관세음보살님으로 공경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큰 복을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그 노부부는 며느리를 항상 공경하여, 며느리에게서 효도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큰 복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정말 믿게 되면 큰 복이 오게 되어 있다.
순교한 사람들도 육체는 고통스러웠겠지만, 영혼은 더없이 맑았을 것이다. 영혼의 기쁨만큼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과학적 지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신은 볼 수 없다. 신이 죽은 시대, 현대인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게 두려운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려면, 먼저 과학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끔 맑아져야 한다.
그대는 황제,
홀로 살으라.
자유의 길을 가라,
자유로운 지혜가 그대를 이끄는 곳으로
사랑스런 사색의 열매들을 완성시켜가면서,
고귀한 그대 행위의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
- 알렉산드르 푸쉬킨, <시인에게> 부분
현대는 모든 사람(民)이 황제(主)가 되어야 하는 시대다. 모두 ‘자유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