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을 위하여
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렇듯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바치는 그의 성실한 마음 때문이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일본 드라마 ‘오싱’을 보았다. 불과 일곱 살인 오싱은 입 하나 줄이기 위해 더부살이를 떠난다.
식구(食口)는 그야말로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인데, 같이 밥을 먹기 힘든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다.
오싱 덕분에 오싱의 가족에게는 쌀 한 가마니가 생긴다. 오싱의 어머니는 오싱에게 쌀밥을 해서 먹인다.
오싱은 데리러 온 사람과 뗏목을 타고 떠나게 된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배웅을 하며 울고, 아버지는 홀로 멀리서 오싱을 보며 울부짖는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먹는 것이다. 배고픔,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큰 서러움이 아닐까?
나도 오싱처럼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배가 고파 부엌으로 가 보았다. 허공에 광주리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군침이 돌았다.
‘저 광주리 안에는 개떡이 있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 나왔다. 우리 가족이 저녁에 함께 먹어야 하니까.
마당에서 혼자 놀다가 수시로 부엌에 가 보았다. 끝내 개떡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어린 왕자’였던 것이다.
‘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렇듯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바치는 그의 성실한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성실한 아이였다. 인간의 본성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오싱은 자신이 떠나야 나머지 가족들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실(誠實), 가장 아름다운 글자다. 이 성실함이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살아가게 한다. 이러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오싱은 할머니가 준 50전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던 츠네에게 도둑 취급을 당하며 그 돈을 빼앗기게 된다.
이때 오싱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렇게 다친 마음으로 살아가는 오싱, 누구에게나 이러한 원초적인 상처가 있을 것이다.
이 상처가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다. 이 마음을 다시 하나로 붙이지 않으면,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거나 질병에 걸리게 된다.
오싱의 일생은 이 상처를 다스리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 상처가 가장 큰 스승이었을 것이다.
나도 오싱 같은 원초적인 마음의 상처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쯤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댓돌에 웬 검은 구두가 놓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안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옆방으로 들어가니 셋째 동생이 울고 있었다.
부모님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올해는 흉년이라 소출이 적습니다... 소작료를 제발 깎아 주십시오... .”
소작료는 5할이었다. 소출의 반은 지주에게 돌아갔다. 지주의 딸이 나와 같은 반이이었다.
그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나도 오싱처럼 그 상처를 스승으로 삼아 살아온 것 같다.
나는 끝없이 ‘평화(平和)’를 갈구해 왔다. 평화는 입(口)에 들어가는 쌀(禾)이 공평(平)한 것이다.
각자의 입에 들어가는 쌀이 차이가 나게 되면,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성실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배종 감독의 영화 ‘웰컴투동막골’에 나오는 명대사, 인민군 장교 리수화가 촌장에게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영도력의 비결을 묻는다.
촌장이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로 대답한다. “영도력의 비결? 글쎄... 뭐를 마이 멕이지 머.”
악(惡)이라는 글자는 성실함,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 ‘버금(亞)가는 마음(心)’이다.
이 세상에 악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는 그 악들의 비명 소리를 항상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시도 때도 없이 마구 날뛰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평화
제왕이 죽어간 곳에
저 낡은 창이 가지 쳐지고, 싹을 틔워
불구자의 지팡이가 되었다
- 뻬이따오, <태양 도시의 메모> 부분
오싱이 살았던 시대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평화는 ‘제왕이 죽어간 곳에’ ‘저 낡은 창이 가지가 쳐지고, 싹을 틔워/ 불구자의 지팡이가 될 때’ 올 것이다.
오싱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