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나라
어떻게 해야 그를 달랠 수 있는지, 어디를 가야 그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눈물의 나라, 그건 그렇게도 신비롭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나는 가끔 허름한 식당을 찾는다.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옛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듯하다. 시장의 한 순대국밥 집에 들어갔다.
창으로 보이는 시장 거리,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향수에 젖는다. 부모님은 오일장에서 좌판을 여셨다.
골목 한켠에 배추, 파, 고추, 상추 등을 늘어놓고 앉아 계시는 부모님, 어린 내가 찾아가면 우동을 사 주셨다.
부모님도 함께 드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나 혼자 먹었을 것 같다. 중화요리 집의 분위기, 우동의 맛만 아릿하게 남아 있다.
학교 교사가 되어 좌판을 연 어머니께 찾아간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막걸리 몇 병과 튀긴 닭(치킨)을 사오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주변에서 좌판을 연 마을 어른분들을 부르셨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큰아들이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셨다.
돈 몇 푼에 훈훈한 정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이제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마을 어른분들도 거의 다 돌아가셨다.
어쩌다 고향 마을에 가보면, 휑하니 바람이 분다. 골목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반은 빈집이다.
순대국밥 집 벽에 ‘코를 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크게 붙어 있다. ‘풋!’ 즐겁다. 얼마나 세게 코를 풀었으면 저런 경고문이 붙었겠는가?
시골 분들은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교양’이 없다. 목소리도 크고 말을 할 때는 침을 마구 튀긴다.
도시에서 오래 살면서 나는 문명인이 되었다. 말을 할 때는 소곤소곤 작게 말을 한다.
하지만, 어릴 적 몸에 배인 교양은 야성이다. 자전거로 시골길을 달릴 때는 크게 노래를 부른다.
나는 혼자 순대국밥을 먹으며 막걸리를 반주하여 마시는 이 시간을 참으로 좋아한다. 아련히 고향으로 돌아간다.
생전의 아버지와 같은 차림새의 두 노인이 순대국밥을 먹고 있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향의 어른들이다.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들들과는 가끔 술을 마신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 주고 싶다. 부모는 죽고 나서도 자식의 가슴 속에 계속 살아있다.
계산을 하고 식당 문을 나서는 두 노인, 아버지의 걸음걸이다. 나의 온몸으로 퍼지는 술기운.
나는 식당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찬바람과 함께 눈물의 나라 속으로 들어간다.
‘...... 어디를 가야 그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눈물의 나라, 그건 그렇게도 신비롭다.’
인생 혹은 거품의
눈물,
그 생애에 걸친 소금기
- 진이정, <눈물의 일생> 부분
우리는 모두 ‘눈물의 일생’일 것이다.
우리의 눈 뒤에는 커다란 눈물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조금만 눈시울이 뜨거워져도 눈물이 흘러 넘친다.
나는 늘 눈 뒤에서 찰랑거리는 눈물의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