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by 고석근

공부는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제발...... 나를 길들여 줘!” 여우가 말했다. “그러고는 싶은데,”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인도 힌두교의 경전 ‘우파니샤드’는 산스크리트어로 ‘가까이 다가 앉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가끔 이 말을 생각하게 된다. ‘공부는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 강의를 갈 때는 긴장하게 된다. 책 읽는 동아리, 글 쓰는 동아리, 참 좋은 것 같다.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대개 실망하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오래전에 ㅊ 시인이 술자리에서 푸념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ㅇ 문학회에 강의를 갔다가 몇 번 하고는 그만 두었어요. 도무지 내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요.”


바둑을 두려고 해도 바둑의 정석을 먼저 배워야 한다. 기본을 익힌 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찾아가야 한다.


모든 분야가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책 읽기나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래전에 테니스 강사한테 들은 얘기다. “자세가 잘못된 사람은 가르치기가 너무나 어려워요.”


책 읽기도 그렇다. 평소에 말초적 쾌락을 주는 독서에 익숙해지다 보면, 깊이 있는 책을 읽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독서는 각자의 취향이 아니냐?’고 항변을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글쓰기도 그렇다. 누구나 처음 글을 쓰게 되면, 관념어들이 난무한다.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낸다.


남들이 읽게 되면,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글을 쓰는 게 굳어지게 되면, 글쓰기가 늘지 않고 지치게 된다.


지친다는 건, 잘못된 길을 간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듯 ‘도(道)는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작새를 보면, “와, 예쁘다!” 하고 감탄하게 된다. 이 감동의 순간을 어떻게 글로 써야 할까?


“나는 공작새를 보고 ‘와, 예쁘다!’ 하고 감탄했다.’라고 쓰게 되면, 본인은 감동을 받겠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동이 오지 않을 것이다.


왜?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으니까. 공작새 꼬리 하나를 사진처럼, 그림처럼 보여주게 되면, 누구나 글쓴이의 마음과 공감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체어를 쓰지 않고, ‘예쁘다’ 같은 추상어들을 남발하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의 습관이 굳어지게 되면, 좋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많은 글쓰기 모임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좋은 강사가 그것을 지적해 주면, 오히려 반발한다. ‘글은 각자의 개성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그래서 나는 모든 다른 분야처럼, 책 읽기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반드시 지도하는 스승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는 조급해한다. “시간이 없어.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그러자 여우가 삶의 비의를 가르쳐 준다.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는가?


- 이정록, <줄탁> 부분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부활할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된다. 이것을 ‘줄(啐)’이라고 한다.


병아리의 껍질을 쪼는 소리를 들은 어미 닭은 바깥에서 껍질을 쪼아준다. 이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병아리는 껍질을 힘껏 쪼지만 쉽지 않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고 나올 만큼만 껍질을 쪼아준다.


줄탁은 인류의 오랜 공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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