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꽃은 적지 않는단다.” 지리학자가 말했다. “왜요? 제일 예쁜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은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최근에 ‘젊은이들을 위한 인문학’을 강의했다. 2, 30대의 젊은이들은 4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개성 있는 삶을 원했다. 그들의 개성이 별처럼 빛날 때, 나도 함께 신명이 났다.
모든 생명체는 ‘생(生)의 의지’가 있다. 모든 생명체들은 생의 의지가 충만하다. 인간만이 예외다.
인간은 언제봐도 권태가 느껴진다.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는 언제 봐도 생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가며, 과거의 기억이 그들의 생기를 빼앗아 간다. 꽃을 보며 허망함을 느낀다.
‘꽃은 덧없는 것!’ 어른들은 영구히 보존되는 것을 원한다. 부패하지 않는 것, 현대 사회에는 부패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린 왕자는 꽃을 보면, “제일 예쁜데!” 감탄을 한다. 어른들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문명사(文明史)는 삶의 의미를 찾는 긴 여로였다. 덧없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을 줄기차게 찾아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중세의 신(神), 인도의 윤회(輪回)... 하지만 인류는 이제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 문명인들은 깊은 허무감에 빠지게 되었다. 삶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 인간 세상의 하늘 위에는 잿빛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현대 문명인의 모든 고뇌의 원인은 어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데에 있다. ‘꽃도 열흘 붉은 꽃은 없어.’
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꽃을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제일 예쁜데!” 이렇게 감탄하는 아이에게 삶의 의미는 필요 없다.
아이는 삶아 있음의 환희, 그 자체이니까. 수만 년 동안의 원시시대는 삶아 있음의 시대였다.
그렇게 신명나게 살아가다 문명이 시작되면서 인류는 삶의 의미를 묻기 시작했다. 삶이 고되었기 때문이다.
원시 시절에는 산과 들, 강에 널려 있는 온갖 동식물들이 먹거리였는데, 농경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먹고살기가 힘들게 되었다.
수확이 엄청나게 늘어난 농업혁명. 하지만 먹고 남는 생산량이 생기면서,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귀족이 생겨났다.
일하는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고된 삶, 삶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톡톡 튀는 삶의 재미가 없어진 자리에 묵직한 삶의 의미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 인간은 엄숙해졌다. 얼굴 표정은 무섭게 변해 갔다.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들만이 아이의 얼굴 표정을 유지했다.
이제 다시 아이가 되어 살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 AI 시대, 인공지능이 일을 하게 되었다.
2, 30대의 젊은이들은 일을 거부한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도 신나게 살 수 있다!’
아예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왕국을 세우는 젊은이들, 수시로 직장을 바꾸는 젊은이들, 예술가가 되어 신명나게 사는 젊은이들... .
우리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서 인류의 미래를 보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아예 묻지 않고 신명나게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을.
모든 것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공기마저 사라진 몸 안으로
생각들은 자꾸만 부풀어올랐다
이제껏 나를 지탱해 온 것이 겨우
한 가닥 선이었을까
- 배영옥, <OFF> 부분
현대 문명사회는 가느다란 한 가닥 선으로 연명하고 있다.
어느 날 그 선이 ‘OFF’ 하게 되면, 휘황찬란한 이 세상이 한순간에 멈추고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할 것이다.
신이 죽은 자리에 피어난 악의 꽃은 이렇게 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