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대하여

by 고석근

신념에 대하여


“그대 자신을 재판하라.” 왕이 대답했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제 자신을 판단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라. 네가 자신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네가 참으로 슬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나는 어릴 적 명절을 쇠러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자주 댁에 갔다. 그때마다 장남인 아버지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문을 일으키자!’


나는 그때부터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동생들에게 차츰 무서운 큰 형이 되어 갔다.


동생들이 잘못을 하면 가차없이 징벌을 했다. 부모님은 나를 은연중에 부모의 대리자로 인정을 했다.


어린이 시절, 청소년 시절을 그렇게 보내며 나는 작은 독재자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육군사관학교를 가려 했다.


의식적으로는 돈이 들지 않는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무의식에서는 나의 신념이 가문에서 국가로 확장한 게 아니었을까?


어머니께서 강하게 반대하셨다. “절대 안 된다. 군대 가면 죽는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6.25를 겪으며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육사에 가지 못했다. 뒤돌아보면, 그때 내가 왜 육사에 가려 했을까? 왜 장교가 되려 했을까?


‘나라를 일으키자!’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언뜻 생각하면, 젊은이다운 좋은 생각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강한 신념이야말로 가장 무섭다. 인류는 항상 정의의 이름으로 무서운 폭력을 저질렀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도 약한 조국을 부흥시키려는 히틀러의 강한 신념에서 일어났다.


자식이 미워 때리는 부모는 없다. 교사는 제자가 잘 되기를 바라며 매를 든다. 살인범도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


인간은 강자일까? 약자일까? 최강자다. 인류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가르쳤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신성(神性)이 있다.’


이 신성을 불교에서는 불성(佛性), 기독교에서는 성령(聖靈)이라고 했다. 공자는 본성(本性), 소크라테스는 이성(理性)이라고 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성을 깨워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의 최강자가 되어야 한다.


최강자는 너그럽다. 항상 여유가 있다. 강한 신념이 다른 존재들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약자들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스승들은 모두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던가!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다. 마음에 한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도 모르게 다른 존재들에게 가한 폭력들을 생각해 본다.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했기에 저지른 잘못들, 강자가 되어 갚아야 한다. 어린 왕자가 만난 왕은 어린 왕자에게 가르침을 준다.


“그대 자신을 재판하라...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제 자신을 판단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라. 네가 자신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자신을 판단하게 되면, 무수히 죄를 저지르는 나약한 인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신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솟아오르는 햇살의 송곳


- 신현림,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부분



행복이 정상이다. 지극히 인간적이다. 불행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강렬한 징후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우리는 충고의 송곳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은 결코 그저 그런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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