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즐겨라

by 고석근

현재를 즐겨라


나는 물을 마셨다. 숨이 편안해졌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사막의 모래가 꿀 빛깔로 물들어갔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래를 보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왜 공연히 마음을 괴롭혀야 한단 말인가...... .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어제 공부 모임에서 한 젊은 회원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항상 과거를 생각하거나 미래를 생각해요.”

공기업에 다니는 20대 청년, 점심을 먹으면서도 ‘내일은 뭘 먹을까?’ 하고 생각해요.


한가할 때는 계속 지난날들이 떠올라요. 항상 머리가 무거워요.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공기업.


이제 ‘성공한 삶’을 누려야 하는데, 왜 그의 머리는 복잡하기만 할까? 그의 몸이 무거운 머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에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들어가 있는가? 반면에 그의 몸은 빈약하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몸의 소리를 외면해야 했다. ‘저 넓은 벌판으로 뛰어가고 싶어!’


그는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차츰 그의 귀는 몸의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 오감에 무디어진 몸.


그의 머리만 비대해졌다. 인간은 오랫동안 짐승으로 살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수백 년 인류사에서, 생각하는 인간이 된 것은 불과 수만 년 전이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고 나서도 주로 몸을 쓰고 살았다.


18세기 후반에 산업혁명이 일어나 근대 산업사화가 형성되면서 인간은 머리를 주로 쓰게 되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지식 위주의 입시교육에 의해, 많은 젊은이들이 머리 중심의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말했다. “이제 머리는 조금만 쓰시고 몸을 주로 쓰면서 살아 가셔요.”


나는 그에게 ‘짐승’이 되라고 말했다. 인간이 길들인 가축들은 긴장감이 없다. 항상 나른한 모습이다.


하지만 산에 가 보면, 온갖 야생 동물들의 팽팽한 긴장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오감은 항상 깨어 있다.


인간도 사실 짐승이다. 짐승들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명사회에 오래 살다 보니 안락해졌다.


머리만 비대해진 몸은 짐승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몸은 항상 다른 곳을 찾는다.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늘 생생하게 깨어 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오감을 깨우는 연습을 항상 하라고 했다.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살아보셔요.”


“걸을 때도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을 다 느껴 보셔요. 온몸에 와 닿는 햇살, 바람을 항상 느껴 보셔요. 주변에 있는 사람, 사물들을 온전히 느껴 보셔요... .”


“그러면, 차츰 살아있음의 환희가 느껴질 거에요. 생기(生氣),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살아있음의 기운이에요.”


“온몸이 깨어나면 깊은 내면에 있는 영혼이 깨어나요.” 내면의 영혼, 어린 왕자를 만난 ‘나’는 삶의 비의를 깨닫게 된다.


‘나는 물을 마셨다. 숨이 편안해졌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사막의 모래가 꿀 빛깔로 물들어갔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래를 보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왜 공연히 마음을 괴롭혀야 한단 말인가...... .’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 아르튀르 랭보, <모음들> 부분



바람 구두를 신고 천하를 주유한 시인, 그는 온몸이 깨어나고 영혼이 깨어났나 보다.


그는 다섯 개의 모음이 창조하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를 본다. 시인은 견자(見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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