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냉정 사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약속을 하고서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 왜 그럴까? 겉으로는 참으로 불성실해 보인다.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성격 형상 과정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얼굴 표정이 로봇처럼 굳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언행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가 ‘술 한잔하자’며 약속 시간을 잡을 때는 진심이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고조된 감정은 곧 가라앉는다. 그는 곧 평상시로 돌아온다. 그는 불안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길을 간다.
그는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억눌렀다. 강한 아버지 밑에서는 자식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큰 나무 아래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못하듯이. 강력한 아버지의 자식들은 영혼이 시들어간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성(理性)과 감정(感情)’이 있다. 마음이 건강하려면, 이성과 감정이 고루 성숙해야 한다.
그런데 억압된 마음은 이성만 계발되고 감정은 무디어진다. 과도하게 발전한 이성가 미숙한 감정의 인간.
그의 이성은 항상 자신의 이익에만 쏠리게 된다. 감정을 바탕으로 나오지 않는 이성은 계산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풍부해야 이성도 풍부하게 된다. 세상을 크게 보고 판단하게 된다. 감정이 미숙한 사람은 인간관계가 상하 수직적이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명령과 복종으로 얽혀진다. 그는 윗사람에게만 복종한다. 아랫사람들에게는 명령만 내린다.
그가 술 한잔하자고 했을 때, 윗사람에게는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약속이 아니라 명령이었으니까 말없이 철회하면 된다.
그것이 겉으로는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변을 하지 못한다.
그는 강자니까. 그가 돈이 없는 약자이면,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그의 인간관계는 점점 축소된다.
그들은 늘 홀로 다닌다. 그들은 최강자인 호랑이나 길을 잃은 유기견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은 의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니까.
나는 딱딱한 그의 얼굴을 본다. 웃을 때는 일그러지는 표정, 그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어린 감정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그는 금방 울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강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아마 집에 가서 혼자가 될 때, 그는 힘없이 쓰러질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그는 자신을 길들인 아버지에게서 책임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길들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질 줄 모른다.
나 그 여자 몸 속에 들어가
그 여자를 사랑하였다
그 여자의 생을
가시로 콱콱 찌르며 사랑하였다
사랑은 마취제여서
그 여자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 김왕노, <물고기 여자와의 사랑1> 부분
시인은 알고 있다. 자신의 아픈 사랑을. 우리도 모두 이런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시인처럼 진실을 알고 나서도 우리 자신을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