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無用之用)’을 위하여

by 고석근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위하여


나는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품고 다니던 내 그림 제1호를 꺼내 그를 시험해 보곤 했다. 그가 정말 이해력이 있는 사람인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늘 이런 대답이었다. “모자로구먼.” 그러면 나는 보아뱀 이야기도 원시림 이야기도 별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트럼프 이야기, 골프 이야기, 정치 이야기, 넥타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그 어른은 그만큼 분별 있는 사람을 하나 알게 되었다고 아주 흐뭇해하는 것이었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날씨가 영하 10도로 떨어졌다.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를 탔다. 기사님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말했다. “기사님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세상 물정에 훤하시죠?” 기사님이 코웃음을 쳤다.


“기사를 수십 년 하고 나면 교수고 박사죠. 그런데 쓸데도 없는 것들을 알아서 뭘 해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게, 택시기사에게는 쓸데없는 거구나! 나는 선거철이 다가오면, 택시 기사님들에게 선거의 전망을 물어본다.


그러면 그 분들은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다.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들보다 훨씬 예리하다.


하지만 그런 통찰들이 쓸데가 없구나! 누가 그분들의 견해를 진지하게 들으려 하겠는가?


그 분들을 언론 매체에서 초청하겠는가? 대학에서 그 분들의 강의를 들으려 하겠는가?


그럼 그 분들의 삶 속에서 얻은 지혜들이 정녕 쓸데없는 걸까? 고대 중국의 철인 장자는 무용지용의 지혜를 가르쳤다.


그 택시기사님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얻게 된 삶의 지혜들은 당장에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택시를 운전하고,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는 그런 삶의 지혜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지혜들은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 뇌의 세포들을 서로 활발하게 운동하게 한다.


뇌의 세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권태를 느끼게 되고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나는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기에 삶 속에서 얻은 지혜들이 당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도 일상생활에서는 그런 지혜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지인들과 만나 얘기를 할 때는 누구나 그렇고 그런 얘기들만 하지 않는가?


우리의 일상 대화들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삶 속에서 얻은 지혜들이 쓸 데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대화들은 한 개인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 수준을 고양시킬 것이다.


오늘은 카페에서 수업을 했다. 차와 맥주를 마시며 신화 속으로 들어갔다. 지적 환희, 삶의 향기가 자욱하다.

삶에 취한다. 우리 안의 깊은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희열, 이러한 대화들이 일상에서 꽃 피어났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는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품고 다니던 그림 제1호를 꺼내 그를 시험해 본다.

그러면 그들은 대답한다. “모자로구먼.”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어린 왕자는 보아뱀 이야기도 원시림 이야기도 별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트럼프 이야기, 골프 이야기, 정치 이야기, 넥타이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만큼 분별 있는 사람을 하나 알게 되었다고 아주 흐뭇해한다.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언어는 기호가 아닌 연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이름들은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시간의 이름들이라고.


- 옥타비오 파스, <대화> 부분



‘언어는 기호가 아닌 연륜.’


삶이 배어 있지 않은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런 언어들이 지식의 이름으로 난무하고 있다.


지식이 된 언어들은 힘이 되어 이 세상을 마구 짓밟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버지와의 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