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에 대한 유감

by 고석근

‘좋은 글’에 대한 유감


“꽃들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어느 날 그는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꽃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돼. 그저 바라보고 향기를 맡아야지.”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좋은 글’을 수시로 보내는 초등학교 동창이 있다. 며칠 전에는 김소월 시인의 시 ‘고향’을 받았다.


나는 이 ‘좋은 글’을 보는 순간, 짜증부터 났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뭔가가 훅 들어오는 느낌 때문이었다.

노자는 말했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게 되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게 된다.


‘-/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은/ 아! 꿈에서는 항시 고향입니다/-’


이 시 구절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고향이 반드시 이런 느낌만 있을까?


‘고향’을 ‘고향’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고향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가슴에 싱싱하게 살아있는 고향이 아닌, 형해화(形骸化)된 고향이 되어버린다.


이런 고향에 대한 ‘좋은 글들’을 ‘폭력적으로’ ‘수시로’ 접하게 되면, 고향은 내용이 없이 앙상한 뼈만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에 깊숙이 배어 있는 고향, 고향은 우리가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어쩌다 우연히 김소월의 고향이라는 시를 읽었다면, 고향은 우리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수시로 마구 뿌려대는 고향은, 허공을 휴지처럼 날아다니며 살과 피가 마르게 된다.


우리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고향 앞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고향’은 우리의 가슴 깊이 숨겨 놓아야 한다.


그 고향이 스스로 발효하여, 정신의 정수가 되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이 고향이 되도록, 그러다 고향은 사라지고 온 우주가 고향이 되도록.


고향을 ‘그리운 고향’으로, 싸구려 인형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모든 그리운 것들이 그렇다.


만해 한용운 시인은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리운 것들을 말로 묶어 놓지 말아야 한다.


모든 그리운 것들이 다 님이 되도록, 우리는 그리운 것들을 되도록 말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말이 마구 난무하는 시대, 우리는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은 또 다른 침묵이니까.


침묵 속에서라야 우리는 진정한 말을 들을 수 있다. 신(神), 사랑, 그리움... 이런 말들이 마구 난무하게 되면, 신, 사랑, 그리움은 사라지고 만다.


말은 주술이다. 상투적인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상투적이 된다.


우리는 말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뿜어내는 말을 해야 한다.


겨울을 견딘 나무에 싹이 돋듯이, 깊은 밤의 강을 건넌 해가 아침에 맑게 떠오르듯이, 푸른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듯이... .


어린 왕자는 여러 별을 여행하다 사막의 여우를 만나 깨닫게 된다. “꽃들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어느 날 그는 내(비행사)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꽃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돼. 그저 바라보고 향기를 맡아야지.”


그렇다. 우리는 그저 삼라만상을 무심히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존재에서는 향기가 난다.



불현듯 개미의 종교가 궁금하다

개미의 학교 개미의 슈퍼마켓

개미의 부업

개미의 비애가 궁금하다

개미처럼 걸어서 식당에 가고 싶은 날

개미처럼 작은 구멍에 집을 짓고 싶은 날

개미같이 작아진 생각으로 웅크리면

정말 개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날


- 유춘희, <개미> 부분



나도 가끔 시인처럼 한참 동안 쪼그려 앉아 개미들을 본다.


개미는 페르몬을 내뿜으며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한평생 서로의 향기를 맡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종교도, 학교도, 부업도, 슈퍼마켓도, 비애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쓰게 되면서, 이 모든 것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언어가 지은 허상들이다.


그들은 한 생(生)을 아이들처럼 놀면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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