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희열을 따라가라!

by 고석근

너의 희열을 따라가라!


그가 가로등을 켜면 별 하나, 꽃 한 송이가 태어나는 거니까. 그가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은 잠이 들고. 아주 재미있는 일인데. 재미있으니까 정말 유익한 것이지.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 신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은?


그는 행동으로 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사랑은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나타난다.


신? 신도 그렇다. 막연히 믿는 게 아니라 정말 신을 아는 사람은 신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한다.


그 행동의 근원은 무엇일까? 인간의 언어로는 알 수 없는 영역, 신비의 영역, 굳이 말로 하자면 도(道), 신(神)의 영역일 것이다.


그럼 이것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것들을 어떻게 알아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바로 ‘희열(Bliss)’일 것이다. 안에서 분수처럼 솟아올라오는 희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충동.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너의 희열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도나 신을 언어로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 자체가 신, 도이니까. 우리의 몸이 신과 도를 만나 기쁨으로 전율할 때, 우리 몸은 도와 신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아주 재미있는 일인데. 재미있으니까 정말 유익한 것이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가 가로등을 켜면 별 하나, 꽃 한 송이가 태어나는 거니까. 그가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은 잠이 들고.’


우리 안에서 희열이 솟아올라 올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다른 세상을 창조하게 된다.


그는 신이 되었다. 그는 최고의 희열 속에 있다. 이 세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이 밖으로 투사된 것이다.


우리 마음이 빈곤하면, 이 세상도 빈곤하다. 우리의 마음이 빈곤할 때는, 우리의 마음이 희열을 모를 때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희열이 솟구쳐 올라올 때, 우리는 이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영원의 샘물에 입을 대고 있다. 우리는 묻는다.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희열을 따라가면 된다. 우선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이 심어준 온갖 쾌락에 물들어 있으니까.


마음 비우는 연습을 계속하여 마음이 텅 비워졌을 때,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오는 희열을 따라가면 된다.


폭설의 밭 속에서 살고 있는 것들!

백설을 뻗치고 올라가는 푸른 청보리들!

폭설의 밭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들!


- 김승희,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들렸다> 부분



삼라만상,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간다. 끝까지... 자신이 다 소멸할 때까지 자신을 밀고 간다.


우리는 어떤 절망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희열을 따라가라!’ 우리는 벌떡 일어나 우리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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