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허구를 이용하라

by 고석근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허구를 이용하라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르게 된 것은 약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이 세상을 정복한 것은 ‘언어’ 덕분이라고 한다. 인간의 언어는 진화하여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주고받게 되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신화(神話)’에 의해 부족사회가 하나의 가족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다.


신화는 실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허구다. 하지만 신화는 엄청난 힘으로 부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신화가 깨지게 된 것은 철기의 등장이었다. 철기를 가진 부족은 청동기, 석기를 사용하는 부족들을 점령했다.

거대한 제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더 이상 신화는 인간의 삶에 유용하지 않았다. 고등종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동안 인류에게 신화는 뭐였나? 원시인들은 ‘헛것’을 믿은 것이었나? 신화를 헛것이라고 해도 된다.

그러면 헛것의 반대인 실재는 이 세상에 있는가? 실재와 허구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허구를 이용하라.”


그렇다. 중요한 건, ‘허구인가? 실재인가?’가 아니다. ‘허구의 노예인가? 허구의 주인인가?’다.


원시부족사회에서는 신화는 대체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그 후 대제국의 신화들은 어떤가?


한결같이 황제들은 신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다.


신이라는 허구가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문제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신에 의해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졌는가?’이다. 지금은 어떤가? 어떤 허구가 우리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는가?


‘돈’이다. 돈을 잘 살펴보자. 5만 원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한 듯이 5만 원이라는 가치로 사용한다.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돈은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국가도 거대한 허구다. 명품은 어떤가? 명품에 서려 있는 아우라도 우리가 부여한 가치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은 ‘가상현실’이라고 한다. 가상과 허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시대.


과거에는 허구를 실재라고 믿었다면, 현대에는 허구가 허구인 줄 알면서도 허구를 실재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마음은 거대한 맑은 거울 같아서 이 세상을 그대로 비추어 준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서 진흙과 가지로 작은 오두막집을 지으리라

아홉 이랑 콩밭을 일구고 꿀벌 집을 지으리라

그리고 벌이 웅웅대는 숲에서 홀로 살리라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부분



우리에게는 ‘자연인’에 대한 꿈이 있다. 우리의 영혼은 허구의 감옥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허구의 감옥을 부수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허구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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