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무상 명령(無上命令)이다
내 앞에 앉은 조르바는 홀짝거리며 열심히 커피를 마셨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삶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빵에 버터와 꿀을 발라 먹었다. 그의 얼굴이 펴지더니 부드러워졌고, 입가의 주름도 없어졌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쪼오 신따의 그림책 ‘모두 깜짝’을 보며, 인류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얼굴은 무상 명령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개구쟁이 원숭이가 코끼리 몸에 낙서를 했다. 양쪽 엉덩이에 얼굴과 귀를 그려 넣었다.
뒤에서 보면 흡사 코끼리의 얼굴 같다. 고릴라는 코끼리 엉덩이에 다가가 눈싸움을 걸었다가 무표정한 얼굴에 겁에 먹고 도망을 친다.
물고기도 코끼리와 인사를 하다 엉덩이를 보고 깜짝 놀라서 펄쩍 뛰어오른다. 엉덩이에 그려진 웃지 않는 얼굴을 보고 다른 동물 친구들도 도망가 버린다.
코끼리는 영문도 모른 채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다른 동물 친구들이 모두 도망간 뒤 개구쟁이 원숭이가 다가왔다.
코끼리가 물었다. “내가 무섭지 않니?” 개구쟁이 원숭이가 대답했다. “무섭긴? 엉덩이 그림은 내가 그린 거야. 무섭지 않아 캭캭캭”
개구쟁이 원숭이는 “미안해” 하고 말하며 엉덩이의 그림을 깨끗이 지워주었다. 다시 동물 친구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얼굴의 옛말은 ‘얼골’이고 얼골은 ‘얼꼴’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얼굴은 그 사람의 영혼, 얼, 넋, 정신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영혼, 정신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사람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너무나 무표정하기 때문이다. 울어도 우는 게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것 같다.
동물들이 코끼리의 엉덩이에 그려진 얼굴을 보고서 경악하듯이 우리도 사람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경악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덤덤하다.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로애락이 없는 좀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나 ‘사람’이 그립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온 후, 우리는 쓰러져 버린다.
카잔차키스는 사람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내 앞에 앉은 조르바는 홀짝거리며 열심히 커피를 마셨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삶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빵에 버터와 꿀을 발라 먹었다. 그의 얼굴이 펴지더니 부드러워졌고, 입가의 주름도 없어졌다.’
인간은 동물에서 ‘사회적 동물’로 진화를 했다. 혼자가 되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이 홀로 살려면 짐승이나 신 중 어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얼굴은 가장 약한 부위다. 그 얼굴을 우리는 마주 보며 살아간다. 서로 무상 명령을 내리고 있다.
“나의 얼굴에 폭력을 행사하지 마시오! 우리 서로를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갑시다!”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 파블로 네루다, <시(詩)> 부분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시가 우리에게 올 때다.
시는 언어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다. 우리의 사고를 다 깨뜨린다.
우리는 얼굴을 되찾고, 삼라만상은 말간 맨얼굴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