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리를 따르라

by 고석근

내면의 소리를 따르라


나는 내 내부의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조리에 닿지 않는 고상한 행위를 포기한 것이었다. 나는 정중하고 차가운 논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어제 공부 모임에서 한 회원이 며느리와의 관계 때문에 항상 머리가 무겁다고 말했다.


‘며느리는 가족인가? 아닌가?’ ‘아들은 누구인가?’ 그녀는 아들 부부와 자신의 관계 설정이 너무나 힘들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크게 보면 핵가족, 일부일처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가문이 사회의 중심이었다. 따라서 아들과 며느리, 시어머니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그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근대의 핵가족이 등장하면서 가족의 범위가 애매해졌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신(神)이 죽은 시대다. 어떤 절대가치의 기준이 사라진 시대다.


우리가 길을 찾아가야 한다. 길을 찾았더라도 조만간, 우리는 낭떠러지 앞에 도달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길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 살아가는 현대인, ‘유목민(노마드)’이다.


그럼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 하나? 이 시대에는 어떤 정답도 없다. 나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잃게 되면,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되돌아가라고 한다. 처음 출발했던 자리가 있는 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의 축의 시대다.


인류 정신의 축이 형성된 시대, 이 시대는 철기시대다. 지구 곳곳에서 정복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례 없는 잔혹한 시대에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 같은 성현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길을 ‘내면의 소리(본성, 로고스)’에서 찾으라고 가르쳤다. 그 이전에는 신화시대였다.


신화시대에는 부족의 신화와 의례 행위를 통해 인간의 길을 찾아갔다. 하지만 철기시대에는 부족은 대제국으로 통합되고 개인의 ‘자아(自我)’가 형성되었다.


인간은 이제 자아로 살아가야 했다. 이제 신화는 힘을 잃었다. 자아가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했다.


우리는 길을 잃을 때마다 인류 정신의 축을 생각해야 한다. 깊은 내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아들, 며느리와의 소소한 충돌들도 내면의 소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머릿속의 생각으로 답을 찾지 말아야 한다.


머리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눈에 훤히 보이는 일상생활의 매뉴얼이나 도덕, 윤리일 뿐이다.


새로운 가족 관계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지혜는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있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조만간 답이 들려올 것이다. 그 소리대로 하면 된다. 우리의 깊은 내면은 천지자연과 맞닿아 있으니까.


머릿속의 지식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온 주인공 나는 조르바를 만나 회한에 젖는다.


‘나는 내 내부의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조리에 닿지 않는 고상한 행위를 포기한 것이었다. 나는 정중하고 차가운 논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창공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부분



시인은 인류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모든 인간의 내면은 하나이니까.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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