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by 고석근

거울아 거울아


아, 영혼이여, 지금까지 넌 그림자만 바라보고도 만족해 왔지? 하지만 이제 너를 날고기 같은 삶의 실체 앞으로 데려갈 테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왕비인 백설 공주의 계모는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최고 예쁘니?”


당연히 자신이 최고 예쁘다는 말이 들려온다. 거울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비춰주니까.


자신의 마음속에 퐁당 빠져 버리게 되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비춰보아야 한다.


자신의 얼굴이 최고 예쁘다면,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한순간에 꽃이 피어오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는 습성에 젖어버렸다. 어릴 적부터 공주님, 왕자님으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왕족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마음만 가지고 논다. ‘마음아 마음아, 세상에서 누가 최고 잘났니?’


사람은 누구나 거울만 보며 살아가는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 엄마 품에서 살아가던 유아기다.


아기는 이 세상에 오로지 홀로 있다. 엄마도, 다른 사람, 다른 사물들도 다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러다 아빠가 등장한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아기의 거대한 거울은 산산조각이 난다.


아기는 이제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거울이 있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의 거울 꺼내 본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최고 잘났니?’


그저께 글쓰기 모임에서 회원들이 아우성을 쳤다. “글을 쓰는 게 너무나 힘들어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거울 때문이다. 마음속의 거울을 깨버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 거울을 밖으로 끄집어낸단 말인가!


스스로 깨닫는 길밖에 없다. 애초에 마음속에는 거울이 없었으니까. 우리 몸 전체가 마음이니까.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얼굴을 조르바의 얼굴에 비춰보고서 문득 깨닫게 된다.


‘아, 영혼이여, 지금까지 넌 그림자만 바라보고도 만족해 왔지? 하지만 이제 너를 날고기 같은 삶의 실체 앞으로 데려갈 테다.’


자신의 거울을 자꾸 들여다보는 한, 우리의 영혼은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서 희희낙락하게 된다.


사는 게 도무지 신이 나지 않는다. 안에서 솟아 올라오던 신명이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을 ‘날고기 같은 삶의 실체’ 앞으로 데려가야 한다. 우리 마음속의 거울 보지 말고, 몸을 풀어 놓으면 된다.


감각 덩어리의 몸이 되어 천지자연의 파동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리하여 자신을 잃어버리면 된다.


그래도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이 저 하늘의 태양이 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그때 글은 온몸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꽃처럼 피어나는 글들을 보고 그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저렇게

외로운 높이에 걸린

등을 본 적 있소?


- 서영처, <달밤> 부분



시인은 밤하늘을 올려보다 ‘저렇게/ 외로운 높이에 걸린’ 달을 본다.


우리 마음속의 거울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 저 거울은 언제나 저 하늘 높이 떠 있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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