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by 고석근

나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진흙 속에 갇혀 있기에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다볼 수 없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극한의 실존적 상황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랑’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쥐가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페스트라는 악령이 도시에 출현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페스트를 자신의 문제로 본다. 파리에서 취재차 왔다가 오랑에 발이 묶여버린 랑베르는 오랑을 떠날 생각만 한다.


신부는 죽은 어린아이는 죄가 없다며 항변하는 리유에게 말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페스트의 먹구름이 전 도시를 뒤덮게 되고, 사람들은 서서히 깨어나게 된다.


‘정직한 사람, 즉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페스트는 우리의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세상에 나의 문제는 없다. 모두 우리의 문제다.


그런데, 왜 오랑의 시민들은 처음에는 페스트를 우리의 문제로 보지 못하고 나의 문제로만 생각했을까?


처음부터 ‘아, 이건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다!’ 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뭉쳤다면, 희생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을 텐데.


조르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진흙 속에 갇혀 있기에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다볼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경험으로만 변화할 수 있다. 눈앞에서 페스트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아야 위기가 실감이 난다.


인간을 키우는 건 경험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경험을 다하지 않는가?


보통 사람들은 경험했으면서도 모를 수가 있다. 무디어진 감수성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이 시인, 작가,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조그만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잠수함 속의 토끼들’이다.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보다 민감한 토끼는 산소가 부족하면 금방 숨쉬기를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잠수함을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고 한다.


인류가 종말의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지구 곳곳에서 토끼 같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나가 있다. 자아(自我 Ego)와 자기(自己 Self)가 있다. 자아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에 모든 문제가 나의 문제로 보인다.


자기는 우주와 하나인 마음이기에 모든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보인다. 이 자기는 우리가 마음을 고요히 하면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마음을 고요히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문제에 갇히지 않는다.


자아 중심의 ‘작은 나’에서 자기 중심의 ‘큰 나’가 될 때,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되고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



악한 자들은 너의 발톱을 무서워했다.

선한 자들은 너의 우아함을 기뻐했다.


- 베릍톨트 브레히트, <차나무 뿌리로 만든 중국 사자상> 부분



모든 인간의 마음은 하나였는데, 자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자가 되고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선한 자가 된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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