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놀랍고도 기뻤다.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최근에 젊은 분들이 공부 모임에 왔다. 자식뻘인 젊은 영혼들을 보며 나는 가슴이 아렸다.
나의 2∽30대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항상 갈증을 느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고 싶은 길은 있었으나 돈이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돈부터 생각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폭발했다.
돈키호테처럼 무작정 길을 떠났다. 다행히 나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나의 길을 찾았다.
너무나 긴 방황이었다. 누가 나를 잘 이끌어 주었다면, 그렇게 긴 방황이 필요했을까?
우리의 학교 교육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도와주지 않는다. 오로지 세속적인 목표를 향해 돌진하게 한다.
몇 년 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어느 사이트에서 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쓴 시를 본 적이 있다.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 아이의 목표는 모든 아이들의 목표였다. 그럼 그 다음의 목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모든 아이들의 목표가 되지 않겠는가?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아이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섰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아, 미용사가 되기 위해 그리도 길고 어려운 길을 가려 하다니! 우리의 처참한 교육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꿈에 대해 부모님,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의 어른들에게 단 한 번도 얘기를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의 눈에 멋있어 보이는 미용사 언니들, 왜 그 아이는 자신의 롤 모델을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커가면서 꿈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의 초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 그 아이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아름답게 다듬어주는 미용사가 멋져 보였을 것이다.
아름다움,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한평생 찾아야 할 최고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 아이가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려는 마음을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가 소중히 가꿔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2∽30대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개성(個性)을 추구했다. 그들의 앞에 놓여 있는 넓은 길을 거부하고 다들 좁은 길을 가려고 했다.
작가, 대중음악가, 팟캐스트, 유튜버, 즉흥극 배우, 영화감독... . 다들 예술의 길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을까? 그들은 항상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릴 것이다.
맹자는 ‘항심(恒心)의 근거는 항산(恒産)’이라고 했다. 재산이 일정하지 않으면 마음은 항상 흔들리게 된다.
왜 우리 사회는 복지가 되지 않는 건가? 우리 사회에 예술이 풍요로워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풍요로워질 텐데.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어 매일 아침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을 텐데.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할 수 있을 텐데.
독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문학이 주는 위안 그것은 살인자의 대열에서 뛰쳐나가게 한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 김현승, <행복의 얼굴> 부분
예술은 행복의 문을 안에서 열 수 있는 열쇠다.
우리는 한평생 행복의 얼굴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