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아이가 되어라

by 고석근

춤추는 아이가 되어라


바로 그때였다.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에 나는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자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탄광 사업이 망한 후 주인공 나와 조르바는 해변에서 춤을 춘다. ‘숭고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바로 그때였다.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에 나는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이다.’


인간은 에너지장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물질)이 끝나는 순간, 에너지장으로 화하기 때문이다.


몸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다. 타나토스, 죽음에의 충동이다. 죽으면 우리는 천지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물질로 살아가는 삶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다. 모든 불꽃이 사그라지는 순간이다.


인간은 삶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지만, 더 강하고 근원적인 것은 죽음에의 충동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아득바득 살지 말아야 한다. 애쓰지 말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아이가 되어야 한다.


니체가 말하는 아이는 최고의 인간이다. 인간의 ‘본성, 타고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어른은 하던 일이 망하면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에게는 일상의 삶이 춤이다. 몸이 에너지 파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가 인간의 본 모습이다.


원시인들은 인간의 본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갔다.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게 하는 물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인간이 타락하게 되는 건,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생겨나면서부터다. 마음이 물질에 고착되면서, 몸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저께 공부 모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눴다. 한 회원이 말했다.


“저는 조르바처럼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늘로 너무 높이 날아오르면 추락할 것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조르바처럼 살기 틀렸어요. 머리에 든 게 많아서요. 그를 알아본 카잔차키스가 되어야 해요.”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한눈에 알아보고, 삶이 바뀌게 된다. 그는 ‘대자유(大自由)’를 깨닫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나는 살아오면서 조르바를 흉내 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조르바처럼 온몸으로 살지 못했다. .


배운 게 나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지식이 와글거리는 머리로 조르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카잔차키스는 우리가 가야 할 본보기, ‘조르바’를 보여주었다.



너는 계속 확인해 주지,

내가 꿈속으로 영영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날개가 필요 없는 마지막 비상 때까지는.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일요일에 심장에게> 부분



시인은 일요일에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는 한시도 쉬지 않는다. 그는 계속 확인해 준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생각은 한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갈 수 있다.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착각할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대지에서 허공으로 뛰어올라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