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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Jan 30. 2024

시간이 잘 간다   

 시간이 잘 간다      


 늙은 포도나무 줄기에서 새싹이 나면 시고 시시껄렁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이 이것들을 익히면 꿀처럼 달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그걸 포도라고 부르죠. 그걸 밟고 즙을 짜서 통에 다 부으면 저 혼자 부글부글 끓어요. (...) 축일에 통을 열면 포도주가 나오죠! 이건 또 무슨 기적입니까?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어제 글쓰기 모임에서 한 회원이 말했다. “글을 쓰니까 시간이 잘 가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시간이 잘 가는 게 좋을까? 잘 가지 않는 게 좋을까? 언뜻 생각하면 시간이 잘 가지 않아야 좋을 것 같다.     


 시간이 잘 가면? 시간이 쏜살같이 날아가면? 금방 죽을 날이 다가오는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잘 가지 않으면? 인생이 길어질까? 장수하게 될까? 우리는 이렇지 않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삶 그 자체다. 사는 게 신날 때, 우리는 시간이 잘 간다는 말을 쓴다.     


 그 회원은 글을 쓰게 되면서 자신과 세상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을 것이다. 삶의 매 순간을 자세히 보게 되었을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이라도 자세히 보게 되면, 기적이 일어난다. 조르바는 말한다.     


 “늙은 포도나무 줄기에서 새싹이 나면 시고 시시껄렁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이 이것들을 익히면 꿀처럼 달게 되고, (...) 축일에 통을 열면 포도주가 나오죠! 이건 또 무슨 기적입니까?”     


 삶의 매 순간이 기적이 되는 삶, 시간이 잘 간다. 하지만, 이러한 삶을 살아가면 인생은 아주 길게 된다.     


 머릿속에 기억되는 게 아주 많아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긴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면서 시간이 휙 지나가지 않았던가! 기억되는 게 별로 많지지 않아서 그렇다.     


 그날이 그날 같은 나날, 시간이 참 안 간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났다.     


 허망하다. 지루한 나날, 이렇게 긴 하루가 모인 시간은 너무나 짧다. 습관적으로 살아서 그렇다.     


 인간은 생명체다. 생명의 힘이 약동해야 한다. 글을 쓰게 되면, 약동하는 세상을 보게 된다.     


 자신에게서도 약동하는 힘이 느껴지게 된다. 온 세상이 춤을 추게 된다. 고흐의 그림들이다.      


 글을 쓰는 건, 우리 안의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생의 의지가 충만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은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직선의 시간’을 학교에서 배우고 일상에서 시계를 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약속이다. 같은 시간을 가져야 서로 의사소통이 되니까. 실제의 시간은 각자 다르다. 상대적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간은 각자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가슴은 쉼 없이 뛰고 있다. 삼라만상도 쉼 없이 뛰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 윤동주, <내일은 없다> 부분            



 그렇다. 내일은 없다.      


 어제도 없다. 기억일 뿐이다.     


 늘 있는 건 오늘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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