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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Feb 13. 2024

길 위의 인생   

 길 위의 인생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걸으면서 잉태된다. 어떤 생각이 걸으면서 떠오른 게 아니라면 절대 그것을 믿지 말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가?     


 주로 잡념에 시달리고 있다. ‘머리가 무거워!’ 우리는 항상 피곤하다. 머리에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인간은 직립하게 되면서 머리까지 피가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머리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까 항상 피가 모자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기가 싫어진다. 습관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습관적으로 살아가게 되면, 삶이 생생하지 않게 된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 삶의 허무가 썰물처럼 밀려온다. 우리는 머리를 항상 비워둬야 한다.     


 평소에 자신이 하는 행동을 알아차리면 된다. 앉아 있을 때는 온몸으로 앉아 있음을 느끼면 된다.     


 그러면 몸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알아차리고 있지 않으면, 생각이 몸을 떠나게 된다.     


 생각은 자신을 스스로 낳는다.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게 된다. 우리는 생각의 무게에 압도당하게 된다.     


 우리는 평소에 마음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걸으면서 잉태된다.”라고 한 것이다.     


 조르바는 생각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몸을 떠난 마음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 되어버린다. 항상 자신의 이익만 계산하게 된다.     


 그래서 머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자신의 이익을 모르게 된다. 그는 계속 이익을 취하면서도 계속 손해를 보게 된다.     


 몸은 지혜로우나 몸을 떠난 마음은 어리석다. 우리는 오로지 몸을 믿고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      


 몸은 언제나 움직이고 싶어 한다. 인간은 동물(動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을 떠난 마음은 안주하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성(城)을 짓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생각하는 인간은 ‘에고이스트(egoist)’가 되어버린다.      


 몸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이 세상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은 끊임없이 이 세상과 소통한다. 몸과 이 세상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몸은 이 세상의 이치와 하나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몸으로 살아온 조르바는 지혜롭다. 책으로 공부한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지혜를 배우게 된다.     


 우리는 늘 길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에게는 오로지 행(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존재의 이유> 부분           



 몸은 이미 ‘존재의 이유’를 알고 있다.     


 그저 존재하면 된다는 것을.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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