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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Feb 15. 2024

하학상달(下學上達)   

 하학상달(下學上達)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펜과 잉크로 공부한 카잔차키스와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공부한 조르바.     

 누가 이 세상의 이치에 통달할 수 있을까? 당연히 조르바다. 조르바를 알아본 카잔차키스는 진정한 지식인이다.     


 인류사에서 한 획을 그은 걸출한 인물들, 그들도 조르바처럼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이치, 이것을 하학상달이라고 한다. 하학(下學), 아래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들만 잘 관찰하여도, 우리는 엄청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하학은 너무나 힘들다. 주변 사람들과 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가부장 문화의 폭력성을 꿰뚫어 볼 때, 시댁 식구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직장의 관행이 저지르는 비리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내부 고발자는 오늘도 무사히 보내고 싶은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껄끄러운 존재일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시류에 휩쓸려 간다. ‘좋은 게 좋은 거야!’ 그들은 상달(上達)부터 깨달으려 한다. 


 천상을 노래하는 건, 얼마나 즐거운가? 손이 닿을 수 없는 까마득히 높은 세상을 논하고 찬미하는 건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임진왜란이 임박했을 때, 조선의 많은 선비가 이기론(理氣論)의 논쟁에 빠져 있었다.      


 ‘이 세상의 근원은 무엇인가? 리(理)인가? 기(氣)인가? 둘 다인가? 이 둘은 어떤 이치로 작동하는가?’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을 보며 시원한 정자에 앉아 고담준론을 하는 광경은 얼마나 기괴한가!     


 지금은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이러한 지식인 세계를 뒤로하고 지리산 자락에서 공부하며 후학을 양성한 남명 조식.   


 그는 하학상달을 실천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진흙투성이에서 자신 안의 연꽃을 피워갔다.     


 그는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허리에는 방울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경의검(敬義劍)과 성성자(惺惺子)다.     


 경(敬)은 내면을 밝힌다. 우리가 오만하지 않으면, 내면에 등불이 켜진다. 그는 항상 환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 환한 마음은 이 세상의 의(義)를 그대로 본다. 그는 의롭지 못한 것들을 단칼에 잘라내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인류의 롤모델이다. 우리가 그처럼 살아가지는 못해도 그의 삶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중국의 성인 공자는 인생삼락의 첫 번째로 공부를 들었다. 그의 공부는 당연히 삶 속의 배움이었을 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그는 나이 70이 되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경지(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에 도달했다.            



 읽던 국사책을 내려놓고    

 강둑에서는 나 혼자 헤매고 있었다.    

 생손 앓는 어머니는 고름을 따려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뒤지고 있었다.    

 그 뒤로 달빛이 깔깔깔    

 자갈밭을 뒤집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 밤에 도시는 어디론가 떠밀리고 있었다. 


  - 김혜순, <국사 공부> 부분      



 시인은 지금 역사의 한복판에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E. H. 카)’이니까. 


 우리는 언제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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