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석근 Feb 16. 2024

조르바와 함께 춤을   

 조르바와 함께 춤을      


 내 속에는 소리 지르는 악마가 한 놈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치받치면 이놈이 소리치죠. ‘춤춰!’ 그러면 나는 춤을 추는 거예요.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남편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을 보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나온 미모의 여성, 무엇이 문제였을까?     


 ‘현모양처(賢母良妻)’가 꿈이었다고 한다. 여고 운동장에 조신하게 앉아 있는 신사임당.      


 그녀는 그 동상을 보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고 한다. 믿음직한 남편과 귀여운 아들, 딸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단란한 가정.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아가려는 꿈, 이것이 문제였다. 그런 가정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학창 시절에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자 집안의 분위기기가 그녀를 혼전순결주의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의식에 굳어져 있는 여러 이상상, 이 이상상들이 그녀의 삶을 망친 주범이다.          


 그녀의 굳어진 여러 생각은 허상이다. 삶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여러 상징은 우리의 삶을 옥죄게 된다.       

 실재하지 않는 관념들에 한 번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신세가 되고 만다.     


 미리 어떤 상을 그려놓고 살아가는 삶은 꿈 같은 인생이 되고 만다. 생기가 다 사라져 버린 빈껍데기의 삶이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란 없으며, 모든 것은 생성 속에 있다. 존재는 있는 그대로의 생성의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생성 속에 있는 존재로 살아가면서 어떤 고정된 상을 세우게 된다. 세상이 어떤 상들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생성 속에 있는 바람 같은 소녀에게 현모양처라는 상을 세뇌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나는 한평생 현모양처로 살아가야지!’ 그녀는 이런 허상에 이끌려 남편을 만났다. 그녀의 인생 속으로 들어온 남편은 이제 가장(家長)으로 군림하게 된다.     


 양처(良妻)와 폭압적인 가장의 절묘한 만남이다. 남자들은 이 세상에 의해 가장으로 재탄생한다.     


 현모와 가장은 서로를 강화한다. 두 사람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나중에 그들은 경악하게 된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들뢰즈는 “자신의 삶을 창조하라!”라고 말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창조자는 입법가이자 춤추는 자다.      

 우리는 자신의 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세상이 주입한 법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입법가는 춤추는 자다. 온몸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자다.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인연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삼라만상은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춤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모든 존재에게 각자 하나의 이름을 지어주고는 그 이름으로 살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이름에 불과한데, 그것이 실체가 되어버린다. 그녀는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 남편은 꼭두각시처럼 폭군이 되어 살아간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 부부는 꼭두각시놀음하고 있다.       


 조르바가 우리에게 삶의 비의를 가르쳐준다.      


 “내 속에는 소리 지르는 악마가 한 놈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치받치면 이놈이 소리치죠. ‘춤춰!’ 그러면 나는 춤을 추는 거예요”          



 죽음이 삼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빙글빙글 춤추듯

 나아가는 수십만 정어리 떼,

 끝내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낳고야 마는

 푸른 목숨들의 일렁이는

 춤사위를 보았는가     


 - 김해자, <축제> 부분           



 바닷속의 정어리 떼 끝없는 춤사위다.      


 정어리 떼만 그러하랴?     


 삼라만상 다 춤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학상달(下學上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