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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Feb 23. 2024

‘관음증(觀淫症)’을 위하여   

 ‘관음증(觀淫症)’을 위하여     


 개별적 존재는 사라지고 개별적 특징들은 말소되었다. 젊었느냐 늙었느냐, 아름다우냐 추하냐 따위는 하등 중요할 것 없는 차이일 뿐이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하는 여자아이들에게 다가가 갑자기 치마를 들치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소심한 나는 그런 ‘장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의 치마 속을 보고 싶은 마음은 나의 무의식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우리는 소망한다. 우리게 금지된 것을. 대부분의 욕망은 금지되었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허망한 욕망이다. 하지만 욕망은 바닷물처럼 우리를 목마르게 한다.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게 한다.     


 옷을 입은 인간의 숙명이다. 관음증은 옷의 미학이 된다. 드러냄과 감춤, 그 미묘한 줄타기 앞에서 우리는 항상 헐떡이게 된다.     


 거의 발가벗고 살아가는 원시인들도 숨기는 몸의 부위가 있다고 한다. 원시인들도 어느 정도 관음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적인 의례를 하며, 병적인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했다. 그들은 항상 태초의 시간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태초의 시간은 ‘살아있음’ 그 자체다. 아이들이 놀이에 흠뻑 빠진 시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잃어버렸다.     


 이제 시간은 어디론가 쏜살처럼 날아간다. 우리는 항상 현기증을 느낀다. ‘멈추고 싶어!’     


 원시인들의 의례는 현대 예술에서 재현되고 있다. 오래전 ㅅ 미술관에서 영상으로 본 행위 예술.     


 한 여인이 단정하게 앉아 있다. 관객들이 다가와 그녀의 앞에 놓인 가위를 들고 그녀의 옷을 자르기 시작했다.     


 가위로 그녀의 옷을 조심조심 자르는 남성들, 그들은 그녀의 발가벗은 몸을 상상할 것이다.     


 그들은 그녀의 음란한 몸을 상상하며 전율할 것이다. 하지만 가위로 옷을 하나하난 자르며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바뀔까?     


 그들은 ‘알아차림 명상’을 하며,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질 것이다. 그때 그들의 앞에 나타난 그녀의 나신.     


 어떤 모습일까? 성스러운 여인의 몸이 아닐까? 그들은 경외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천국에 온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모든 금기에서 해방된 인간에게 이 세상은 신비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스위스를 여행하다 남녀 혼탕에 다녀왔다는 분의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남의 눈을 의식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차츰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어요.”      


 ‘희망의 누드’다. 이 세상은 다 누드다. 그래서 찬란하다. 말간 눈으로 보는 말간 세상이다.     


 인간만이 옷을 입고 살아간다. 가려진 몸을 보려는 인간의 소망,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몰카가 우리를 엿보고 있다.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숨겨둔 우리의 음란한 눈이다.     

 조르바의 눈은 우리의 태초의 눈이다.     


 ‘젊었느냐 늙었느냐, 아름다우냐 추하냐 따위는 하등 중요할 것 없는 차이일 뿐이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만진다, 만진다, 떨면서 만진다, 파충류가 기어오는 밤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매끈매끈하고 넓은 등을 만진다, 떨면서 만진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만진다,      


 - 혼다 히사시, <봄> 부분           



 시인의 손은 떨면서 금기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      


 봄이다.      


 천지자연이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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