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석근 Feb 24. 2024

고통은 환상이다   

 고통은 환상이다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최근에 ‘쇼펜하우어 신드롬’이 일고 있다고 한다. 나도 실감하고 있다. 공부 모임에서 쇼펜하우어를 공부하자는 반이 두 개나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의지다. 그것을 우리가 억지로 인식론의 관점에서 하나하나 구별하여 나누는 것일 따름이다. 이를 개별화의 원리라고 한다.”     


 그는 이 개별화의 원리에 의해 우리는 ‘시간과 공간’, ‘인과율’, ‘논리 규칙’의 인식체계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간과 공간이 당연히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그것은 개별자들의 의지가 드러난 표상에 불과하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삼라만상은 다 나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인과율, 논리 규칙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허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결국 ‘각자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꼭두각시들이다. 우리는 이 허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는 직관적으로 우주의 의지를 포착해 낼 수 있다면, 개별적인 의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별자의 의지를 넘어서는 우주 차원의 의지, 그것은 하나의 의지다. ‘나와 너’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의지다.     

 그는 이러한 인식은 순수하게 직관에 몰입하여, 자신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순수하게 직관에 몰입하는 관조, 이때 우리는 개별자를 넘어서 커다란 하나의 의지가 된다.     


 그때 우리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나일 때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이 있지만, 큰 나가 되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럼 우리는 한평생 관조만 하며 살아가야 할까? 자신과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관조의 삶은 결국에는 파탄이 날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쇼펜하우어 신드롬은 심히 두렵다. 관조의 삶을 살아가려는 현대인의 슬픈 얼굴 같다.     


 인간은 언제나 생의 기운이 약동하는 생명체다. 우리는 삶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게 된다. ‘힘에의 의지로 살아라!’     


 힘에의 의지는 선악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한다. 선악을 넘어서 오롯이 자신의 신명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작은 나’를 넘어서게 된다. 그의 깊은 내면에서 ‘조르바’가 깨어나게 된다.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하늘 아래 

 어떤 슬픔도

 온전히 한 존재의 몫으로

 주어진 것은 없다


 - 정용주, <혼자 울지 마라> 부분       



 모든 슬픔은 그것이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환상에서 온다.      


 따라서 우리는 혼자 울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함께 울게 되면, 모든 슬픔은 축제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관음증(觀淫症)’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