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석근 Feb 22. 2024

세계 시민을 향하여   

 세계 시민을 향하여

      

 그때, 어린 나는 하마터면 우물에 빠질 뻔했다. 자라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거의 빠질 뻔했다. 또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참담했다.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한 고교생, 나는 이 세상을 티끌처럼 부유했다.      


 그러다 한 서점에서 만난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어둑한 자취방에서 묵묵히 읽었다.     


 그의 철학은 ‘관조’였다. 자신과 이 세상을 멀찍이서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멀찍이서 바라보면 견딜 수 있게 된다.     


 요즘 서점가에 ‘쇼펜하우어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아, 사는 게 다들 너무 힘든가 보다!’     


 오래전에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이제 각자 살아남아야 해!’         


 우리는 ‘자기계발서’을 읽으며 각자 살아남는 비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기계발은 시지프스의 형벌이다.        


 우리는 계속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자신을 힘겹게 앞으로 밀고 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철인 쇼펜하우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이 하나 있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뭔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삶의 비의를 가르쳐준다. “인생은 고뇌와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다.”     


 그는 “일할 때는 고뇌요, 쉴 때는 권태”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둘 사이에서 욕심을 버리고 중용의 삶을 살아라!”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의 비결은 ‘관조하는 삶’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말하는 관조하는 삶을 쇼펜하우어의 관조와 같게 보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했다. 그 당시의 그리스는 도시국가(polis)였다.     


 그는 인간을 ‘도시국가의 동물(Political Animals)’로 본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은 홀로 자신과 이 세상을 관조하는 동물이 아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폴리스)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관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인류는 기후 위기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다.     


 인류가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인류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관조하는 삶을 동경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열풍이 세계 시민을 향한 태풍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르바가 우리에게 이 시대의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관조>라는 단어의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해야 할 때다.           



 세상살이는 큰 꿈속과 같아 

 어찌 그 삶을 수고롭게 할까  

 그래서 종일토록 취하여  

 쓰러져 앞 마루에 누웠네       


 - 이백, <춘일취기언지 (春日醉起言志)-어느 봄날 취하여 일어나 뜻을 적다> 부분            



 시인의 삶의 태도가 관조다.     


 하지만 그는 그 시대의 모든 고통을 안고 취하여 누워있다.     



작가의 이전글 노인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