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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Feb 20. 2024

노인을 위하여   

 노인을 위하여      


 그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물과 새롭게 만난다. 끊임없이 놀라고 ‘왜, 어째서’라는 질문을 달고 나닌다. 모든 일이 그에게는 기적이며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바다와 나무와 새와 돌을 보고도 새삼스레 놀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문이 닫혔다. 곁에 서 있던 한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아직 안 내렸어요!” 다시 문이 열리고 노인이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다.     


 잠자코 노인을 바라보는 승객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삐 어디를 가야 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노인을 향해 욕을 하지 않았을까?     


 오래전, 영국에 유학하고 온 한 젊은이의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영국에서는 버스가 오면, 장애인, 여성, 아이, 노인이 먼저 타요.”     


 ‘헉, 그런 나라가 있구나!’ 가슴이 먹먹했다. 훈훈한 서로의 마음이 그들을 고이 감싸 안을 것이다.           


 나는 노인의 대열에 끼게 되면서 젊은이들의 ‘노인 혐오’를 실감한다. 버스에 타면 옆자리의 젊은이가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 경우가 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 참담하다. 이런 느낌들이 모여 우리 사회에는 혐오가 난무한다.     


 한 여대생이 말하더란다. “나는 나이 40이 되면 죽을 거예요.”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생(生)만 취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곧 30이 될 텐데, 그때부터는 사는 게 지옥이 될 것이다.     


 째깍째깍, 시계의 바늘 소리가 늘 그녀의 등 뒤에서 죽음의 장송곡처럼 들려올 것이다.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젊음도 동시에 사라진다. 노인을 혐오하는 이 시대는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요즘 공부 모임에 20대∽30대의 젊은이들이 왔다. 그들은 나를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들은 공부의 즐거움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공부, 그들은 새로운 공부법을 알게 되면서 삶의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발명해가는 존재다. 동물은 주어인 환경에 안주하지만, 인간은 극복하려 한다.     


 기존의 학교 공부는 지식 위주의 공부이기에, 안주하게 한다. 하지만 인문학은 다르다.     


 자신을 초극하게 한다.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공부는 삶을 찬란하게 한다. 살아있음의 환희를 느끼게 한다.     

 살아있음의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혐오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신명이 나 있는데, 어느 누가 혐오스러우랴?     


 효율성만 강조하는 이 세상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싫어지고 남도 싫어진다.     


 우리 사회가 성과제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모두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복지사회가 되어,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사회가 되면, 학교 교육도 바뀔 것이다. 각 개인의 재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대전환을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세상은 복지사회에서 가능할 것이다.     


 나는 꿈꾼다. 우리 모두 조르바 같은 아이가 되어 모두 신명 나게 살아가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그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물과 새롭게 만난다. (...) 모든 일이 그에게는 기적이며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바다와 나무와 새와 돌을 보고도 새삼스레 놀란다.’  



 여든 나이에다 또 네 살을 더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신선은 더욱 아닐세.

 다리에 근력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에도 정기가 없어 앉았다 하면 조네.


 - 김삿갓, <노인자조(老人自嘲)> 부분   



 노인은 사람도 귀신도 아닌 존재다.      


 더더구나 신선은 아니다.     


 우리는 시인처럼 아이가 되어 늘 노래하며 이 세상을 놀다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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