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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Mar 02. 2024

‘핵개인’의 시대   

 ‘핵개인’의 시대      


 그 순간부터 조르바는 사회가 정한 미덕들을 박차고 나와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미덕과 질서에 기꺼이 복종하는 ‘낙타’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자’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자기 내면의 자유 의지의 소리에 따라 삶을 살기 시작한다. (...) 그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폭군이셨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술에 취하신 아버지는 가끔 밥상을 뒤엎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방바닥에 널브러진 밥과 밥그릇, 반찬들을 행주로 깔끔하게 치우셨다.      


 어머니는 수건으로 머리에 띠를 묶고서 자주 앓아누웠다. 나는 어머니를 망연히 바라보며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나는 그때마다 결심했다. ‘내가 빨리 커서 엄마를 보호해야지! 엄마를 반드시 호강시켜 드릴 거야!’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술상을 뒤엎으려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더니 힘없이 팔을 내렸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아버지에 대한 멸시, 이러한 나의 비뚤어진 인성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선녀와 나무꾼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를 끝없이 부유하는 남자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끝내 나무꾼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아내가 아닌 어머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닭이 되어 새벽마다 지붕에 올라가 하늘에 있는 아내를 향해 울부짖는다.     


 나는 다행히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서서히 ‘강고한 어머니의 세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공백은 너무나 크다는 생각을 한다. 핵가족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절대적이다.     


 어머니는 자연의 대표자다. 조건 없는 사랑을 가르쳐준다. 아버지는 사회의 대표자다. 이 세상의 율법을 가르쳐준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은 우리의 천국이다. 세상 속으로 나가기 싫다. 이때 아버지는 아이를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다.     


 내게는 항상 어머니의 세계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다.      


 너무나 안온했던 어머니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서. 내가 만일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반사회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이 등장한다고 한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송길영 지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젊은 층은 생명력을 제한하는 그 모든 것을 ‘권위적’이라고 느낍니다. 앞으로의 핵개인들은 ‘권위적이다’라는 말 자체를 더욱 혐오의 감정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핵개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조르바가 현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일 것이다. 그는 니체가 말하는 최고의 인간, 아이가 된 인간이다.     


 “그는 자기 내면의 자유 의지의 소리에 따라 삶을 살기 시작한다. (...) 그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앞으로 핵개인의 성공 여부는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할 것이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윤동주, <십자가> 부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려야 한다.


 핵개인으로 부활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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