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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Mar 01. 2024

여자의 일생   

 여자의 일생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는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오랜만에 동갑내기 외종사촌 누이와 전화 통화를 했다. “시집을 내고 싶은데, 돈이 얼마나 들어?”     


 “응? 시집을?” “응, 써놓은 게 많아.” 노트북이 아니라 노트에 써 놓았단다. 나는 아득히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가야 했다. 배에서 내려서는 고개를 넘어갔다.     


 삿대로 강바닥을 짚으며 가는 조각배, 나는 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 푸른 강물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만난 여자아이, 함께 들판을 쏘다니며 깨진 병 조각을 주워 엿으로 바꿔 먹었다.       


 외갓집에 가면 항상 먹을 게 풍부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골목 골목을 다니며 친척 집을 방문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뒤꼍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라.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피해 15세에 결혼하셨다.     


 하지만, 결혼은 파탄에 이르게 되고 어머니는 집을 나오셨다고 했다. 하지만 외갓집에서는 받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출가외인(出嫁外人), 결혼한 여자는 남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부유했던 친정집에 가지 못하고 굶주리신 어머니.     


 그 후 아버지를 만나 힘겹게 가정을 이루었지만, 할아버지에게 며느리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인 내가 태어나고 나서야 부모님은 혼인 신고를 했다. 누이는 출가하기도 전에 차별 대우를 받았다.     


 누이의 두 살 더 많은 오빠와 두 살 아래의 남동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ㅅ 대학을 나왔다.     


 누이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다. 어머니와 누이의 일생은 ‘여자의 일생’을 반복하고 있다.     


 누이에게 노트에 쓴 시들을 복사해서 집으로 부쳐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잘 정리해서 시집이 나올 수 있게 도와주려 한다.     


 이제 누이의 시집이 새로운 여자의 일생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시의 힘으로 차이나는 여자의 일생이 반복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조르바의 다음과 같은 말에 분노한다.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는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얼마나 많은 남자가 ‘여자를 갖고 싶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러면서 많은 남자가 여자를 소유만 하지, 기쁘게 해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조르바는 여자를 기쁘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 이렇게 하는 남자가 과연 이 세상에 얼마

나 있는가?     


 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상적인 남성상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봉건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땅의 남자들이 마초라고 비난받는 거의 한 세기 전의 조르바의 수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 최승자, <귀여운 아버지> 부분      



 남자가 늙으면 다시 아기가 된다.     


 시인은 늙은 아버지를 ‘오, 가여운 내 자식.’이라고 부른다.     


 여성의 사랑은 무한하다. 언젠가는 가부장 사회를 다 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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