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명상법

by 고석근

‘알아차림’ 명상법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아무리 어두운 방안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머리가 어두우면 한낮 햇볕 속에서도 도깨비가 나타난다. - 홍자성



50대에 들어서며 ‘불안장애’라는 마음의 병에 걸렸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스트레스를 내 여린 마음이 견디지 못했나 보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태풍이 내 주위를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럴 때는 어디에 있건 한동안 가만히 주저앉아 어지름 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쉬어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알아차림 명상을 했다. 심장이 마구 뛰는 몸, 불안에 떨고 있는 내 가냘픈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차츰 태풍이 가라앉듯 마음과 세상은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홍자성은 그의 저서 ‘채근담’에서 말했다.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아무리 어두운 방안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머리가 어두우면 한낮 햇볕 속에서도 도깨비가 나타난다.”


나는 그때 이런 마음의 이치를 깨달았다.


오랫동안 요가를 하고 명상법도 배웠는데, 막상 불안장애라는 거대한 태풍이 불어왔을 때는 나는 작고 여린 짐승처럼 숨을 할딱거리며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알아차림 명상을 하면서부터는 불안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불안에 떠는 내 마음을 굽어보는 큰 나. 그 나는 내 마음 안의 ‘참나(진아眞我)’였다. 내 안의 신성(神性)이었다.


우주 그 자체인 내 안의 참나가 작고 여린 내 마음을 어머니가 아기를 들여다보듯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마구 떨고 있던 내 안의 아기는 차츰 평온을 되찾았다.


나는 그때 ‘모든 것을 지어내는 마음(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마음의 비의를 크게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세 달 가량을 산길을 다니며 알아차림 명상을 하다 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그때 바라본 세상은 얼마나 눈부셨던가!


아마 그게 ‘작은 견성(세상의 본 모습을 보는 것- 見性)’이 아니었을까? 그 뒤에는 다시 세상이 누추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때 본 눈부셨던 세상은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바다와 파도로 비유한다. 마음이 출렁이면 희로애락이 일어난다. 마음이 파도가 치는 것이다.


파도가 된 마음은 원래 자신의 모습(본래면목本來面目), 바다를 잃어버린다. 그러다보면 우리 마음 전체가 파도치는 마음이 되어버린다.


화가 화를 부르고 슬픔이 슬픔을 부른다. 이게 습(習)이 되고 나중에는 툭하면 화를 내고, 툭하면 슬픔에 젖어버린다. 우울증에 걸린다.


우리는 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파도처럼 화가 났다가 가라앉는 마음을. 파도처럼 슬픔이 일어났다가 가라앉는 마음을. 파도처럼 즐거움이 일어났다가 가라앉는 마음을....... .


우리가 바다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 김삿갓,《죽 한 그릇》부분



시인은 천하를 주유하다 어느 시골집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주인 부부는 멀건 죽을 내놓으며 ‘면목 없다’ 말한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멀건 죽이 아니라 멀건 죽에 ‘얼비쳐 오는 청산’이 보인다.


울분을 안고 세상을 방랑하며 오랫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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