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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May 29. 2024

가스라이팅 세상   

 가스라이팅 세상     


 사람은 삶을 창조하지 못하면 파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폭력에 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1900~1980)          



 최근에 우리 사회에 유행한 말이 ‘가스라이팅’일 것이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말은 1938년 영국에서 상영된 연극 <가스등 Gaslight>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레고리는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폴라에게 접근하여 결혼한다. 그는 폴라가 자신이 선물한 브로치를 잃어버린 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꾸민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반복되자 사랑하는 남편을 믿은 폴라는 점차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불안에 빠지게 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의 영혼은 점차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문제는 무엇일까? 남편을 쉽게 믿은 게 잘못일까? 그러면 우리는 항상 남을 의심하고 살아야 하나?     

 항상 남(가까운 가족을 포함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말했다.     


 “사람은 삶을 창조하지 못하면 파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폭력에 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녀의 문제는 ‘자신의 삶을 창조하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거의 다 이렇게 살아가지 않는가?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 사회는 ‘가스라이팅 세상’이다. 약육강식의 생지옥이다. 우리는 이 생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구성해가야 한다. 매 순간,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지치지 않는 것, 안에서 희열이 솟아올라오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세상이 좋다고 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남이 기준인 삶을 살아가면 반드시 남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던지 당하게 된다.     


 창조가 없는 삶은 무미건조해진다. 허무한 삶을 견딜 수 없어 서서히 자기 파괴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가 주인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인간만큼 신비로운 게 어디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게 기적이 아닌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자. 주인의 삶은 찬란한 기쁨이다. 주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파괴하거나 누군가에게 파괴당해야 한다.       



 사랑도, 눈물도, 진짜가 아닌 것 같애, 

 사랑 비슷한 

 눈물 비슷한 

 흔적 비슷한 

 분노 비슷한 

 그런 비슷한 것들이 나 비슷한 것들을 

 감싸고      


 - 김승희, <떠도는 환유 5> 부분          



 세상은 거대한 매트릭스다.     


 우리는 숫자와 기호가 되어 떠 돈다.     


 도무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아. 팔목을 긋고 절벽에 몸을 던져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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