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by 고석근

세계화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로 구분된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가지로 구분된 맛은 사람의 입맛을 잃게 한다. 말달리며 즐기는 사냥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가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힌다. - 노자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는 가끔 반주를 하러 식당에 갔다. 아내와 거리를 쏘다니다 출입문이나 창문을 열어놓은 식당에 들어가 바람이 잘 통하는 출입문 옆이나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하며 막걸리 한 병을 시켜 반주를 했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이 세상은 낙원으로 화했다. 술은 기적의 음식이다. 물을 마시는데, 불이 되는 음식. 물과 불의 만남. 삼라만상의 진리의 표상이다. 나도 진리 한 자락이 된다.


이제 출입문과 창문을 꽁꽁 닫는 겨울이 와 식당에 가지 못한다. 반주를 하러가던 ‘맛집들’이 눈에 선하다.


그 맛을 즐길 수 없으니 삶의 한 귀퉁이가 텅 비어 버렸다. 집에서 평소에 먹던 맛들이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노자가 일찍이 통찰한 것처럼 ‘구분된 맛이 외려 입맛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코로나 19가 3년째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화, 지구화’가 진행될 때 나는 두려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모르지 않는가?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많은 학자들이 경고했었다.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는 요인 중의 하나가 ‘전염병’이라고.


지구가 하나가 되면 전염병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이런 질문 앞에 왜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학자들은 침묵했을까?


나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을 읽으며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이렇게 ‘관념적인 정의론’을 펴는가?


미국 학자로서 미국 국민에게 시급한 정의들은 왜 논하지 않는가? 흑백문제, 빈부격차, 공공의료, 군산복합체의 경제구조...... . 그의 정의론의 범주엔 왜 전염병은 왜 없는가?


학문이 당대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영감을 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에겐 ‘두 개의 나’가 있다. 하나는 우주만큼 큰 나다. 그 나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다. 무의식, 집단 무의식에 있다. 마음을 고요히 해야 닿을 수 있는 우리의 영혼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다. 이 세상의 어떤 역할을 하는 자아다. 아버지, 어머니, 형, 아우, 회사원, 공무원, 부자, 빈자...... .


이 자아는 자신밖에 모른다. 끝없이 쾌락을 좋아한다.


그래서 노자는 경계했다.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로 구분된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가지로 구분된 맛은 사람의 입맛을 잃게 한다. 말달리며 즐기는 사냥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가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힌다.’


자아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간다. 여행에 한 번 맛들이면 국내 여행에 만족하지 못한다. 세계를 다 다녀도 만족이 되지 않는다. 우주여행을 꿈꾼다. 우주를 다 다녀도 우주 밖을 꿈 꿀 것이다.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자아, 하지만 영혼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부족함이 없다.


이 영혼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성자, 현자들이다. 원시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항상 영혼이 깨어있어 늘 충만하게 살아간다.


자아는 항상 깨어 있고 영혼은 잠자는 현대 문명인들에게 세계화는 얼마나 위험한가!


우리는 이제 사막 같은 세상에서 오아시스를 찾아야 한다. 오아시스는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있다. 영원한 생명의 샘이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내버려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나의 축제를 위하여》부분



우리의 인생은 항상 뭔가를 해야 하는 숙제가 되어버렸다. ‘자아 중심의 사회’가 되어서 그렇다.


자아는 세상 속의 ‘나’여서, 남보다 잘나야 한다. 항상 자신을 돋보이려하고 남을 짓밟으려 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되라고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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