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즘 ‘법대로 해!’가 시류가 되고 있는 듯하다. 양대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법조인 출신이고, 현직 대통령도 법조인 출신이다.
법조인의 위상이 날로 커지고 있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정치인의 여러 정책을 사법기관에서 결정을 한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대 자본주의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만들었다. 공장은 어떤 법칙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법대로 해!’의 정신이 나온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법이 아니라 종교가 지배적인 정신이었다. 그래서 종교인의 위상이 높았다.
그러면 이런 ‘법대로 해!’의 정신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이 세계는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걸까?
이 세상의 물질세계는 엄격한 법칙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육체는 물질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물질을 넘어선 세계,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비물질의 세계는 ‘에너지 장(場)’으로 존재한다. 영원한 율동의 세계다.
우리가 한의원에 가면, 육체의 어느 한 부분에 침을 놓는 것 같지만 실은 기(氣)의 흐름을 좋게 해주는 경혈에 놓지 않는가?
우리는 두 세계에서 살아간다. 인과론 같은 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물질의 세계와 에너지(기)의 영원한 파동인 비물질의 세계.
따라서 우리가 ‘법대로 해!’의 정신으로 살아가면 반쪽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온전한 인생이 아니다.
에너지 장, 기의 세계는 오로지 영원한 율동만 있기에 우리는 항상 자신의 삶을 신나게 생성해 내야 한다.
생기발랄한 삶은 우리가 우주의 춤과 하나가 될 때 가능하다. 물질의 세계의 법칙에만 맞춰 살아가면 신이 나지 않는다. ‘물질은 파동이 낮은 에너지이기 때문(아인슈타인)’이다.
물질의 세계는 우리가 감각으로 지각하기에 실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실상은 에너지의 세계다. 따라서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삶을 창조해 갈 때, 우리의 인생은 무한히 아름다워진다.
현대 철학의 아버지 니체는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창조하지 않으려는 인간을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진화하려는 생명체의 본능을 포기한 인간이다. 자본주의가 주는 온갖 쾌락에 안주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무한히 발명해가는 인간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했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최고의 인간이다.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했다. 인간은 ‘폴리스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고향, 아테네라는 폴리스(도시국가)의 존재, 폴리스를 이끌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폴리스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아고라 광장에 모여 폴리스의 국정 전방에 관해 논의하고 집행했다.
우리는 이러한 민주주의 정신을 되살려내야 한다. 우리 헌법에 민주주의 정신이 잘 살아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있다.
‘법대로 해!’는 민주주의 정신이 아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법은 인간이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의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법대로’를 주장하게 되면,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정의로운 법집행을 하는 ‘포청천’은 이 세상에 별로 없기도 하지만, 법에게 우리의 삶을 맡기다 보면 우리는 자꾸만 나약하게 된다.
함께 모여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자. 인간은 안 보이고 법만 굳건히 서 있는 세상은 회색이다. 죽음이다. 우리는 ‘영원한 저 푸른 생명의 나무’가 되어야 한다.
한때는 저기여기 결혼식장에 다니느라 바빴다.
이제는 애들 돐잔치 챙기면서 우리들은 만난다.
〔...... 〕
이 애들 시집 장가보내는 식장에서 서로의 안부와 건강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問喪客이 될 것이다.
그때,
야, 니는 어떻게 살았니?
결코 이렇게 될 수는 없다.
- 황지우,《나는 너다 - 136》부분
인간은 나가 너이고 너는 나인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나?
우리가 문상객(問喪客)이 되었을 때, 우리는 참담하게 자신들을 되돌아 볼 것이다. ‘야, 니는 어떻게 살았니?’
우리는 ‘결코 이렇게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