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마음이 곧 이치다. - 왕양명
나는 초등학교를 9살에 들어갔다. ‘아니? 다른 아이들보다 내가 한 살 더 많잖아.’ 나는 너무나 창피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항의했다. “엄마, 나 왜 9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어?”
엄마의 대답은 우리 집이 워낙 가난해서 중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초등학교만 보내야 하니 많이 배우라고 9살에 보냈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서러운 이야기지만, 엄마는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그래서 나는 공부 자체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집에 오면 밭에 일하러 가거나 소꼴을 베러 가야 했다.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건성으로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6학년이 되자 가정 형편이 좋아져 부모님은 중학교에 진학하라고 했다.
나는 성적이 좋았다. 그 당시 시험은 사지선다형 위주였다. 나는 정답을 잘 찍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문제를 읽으며 이리저리 짜 맞추다 보면 답이 보였다. 실력이 별로 없으면서도 성적이 높게 나오는 기이한 현상.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공부 잘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다.
중학교 가서도 고등학교에 가지 못할 형편이었는데, 학비가 무료이고 취직까지 시켜준다는 고등학교가 서울에 있다고 해서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고등학교에는 시골의 가난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성적이 높게 나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2년 한 후에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도 모르는 문제들을 잘 찍어 진학할 수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의 공부는 그야말로 단편적인 지식 위주의 교육이었다. 아마 시험 보는 요령을 터득한 아이들은 성적이 높게 나왔을 것이다.
오랫동안 ‘공부’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중국 명대의 대사상가 왕양명을 만나게 되면서 공부에 대해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향에 있는 아들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한 제자가 안절부절 못하자, 왕양명은 말한다. “지금은 공부할 때다!”
‘헉!’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자식이 위독하다는 데, 공부하라니?...... 아, 맞아! 바로 이럴 때 공부해야 해!’
그래서 왕양명의 가르침을 기록한 ‘전습록’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오! 이 위대한 책을 이제야 만나다니!’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 나온다.
제2의 공자로 불리는 주자는 격물치지를 ‘사물(物)의 세계를 탐구(格)하여 앎(知)에 이르다(致)’로 해석했다.
그래서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주자 이후의 유학, 성리학은 이 세상의 이치를 열심히 탐구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되었다.
우리나라(조선)도 주자학이 주류의 유학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임박했음에도 선비들은 이 세상의 진리가 무엇이냐? 리(理)와 기(氣)를 따지며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지 않았던가!
주자학이 주류였던 중국의 명나라도 그랬다.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 가는데, 백성들의 삶은 아랑곳없이 사대부들은 치열하게 이 세상의 이치를 탐구했다.
이러한 유학에 반기를 든 사람이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이다. 그는 삶과 유리된 공부, 학문을 거부했다.
그는 격물치지를 주자와 다르게 해석했다. ‘사물(物)의 세계’를 ‘사건(事)이 일어나는 세계’로 해석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사물(事物)이라는 게, 단순히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우리 앞에 나타나는 여러 사건들이 아닌가?
우리가 길을 가다 눈앞에 자꾸만 식당들(사물)이 나타날 때(사건)는 배가 고플 때가 아니었던가?
겉으로 보이는 사물들이란 우리 마음의 작용에 의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나는 삶의 온갖 사건들도 우리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의 이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 마음에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왕양명은 격물을 ‘우리가 마주치는 여러 사건들(물)을 바로잡는(격) 것’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사건들을 바로잡자! 그러면 어떻게? 바로 우리 안의 좋은 마음, 진리를 잘 알 수 있는 마음 ‘양지(良知)’에 비추어 바로잡자!
왕양명은 맹자의 성선설을 이어받는다. 우리는 항상 우리 안의 하늘이 내려준 본성(本性), 양심 즉 양지의 소리를 들으며 부딪치는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이렇게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아들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멘붕이 되었을 때도 정신을 차려 자신의 양지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면?
왕양명은 일생을 이렇게 살아갔다. 그가 죽을 때 제자들이 유언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마음이 환하다. 더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느냐?”
일상이 공부가 되는 삶, 나날이 마음은 환해질 것이다. 이것을 왕양명은 ‘치지’라고 한다. 격물하여 양지에 이르는 것. 진리 탐구와 인격 수양, 일상사가 하나가 되는 찬란한 삶이다.
얼마나 좋은 공부법인가? 자신도 멋있게 가꾸고 세상에도 기여하는 공부. 선비의 이상상인 군자(君子)의 길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이런 인간상이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닌가? 공부가 강의실에 갇히지 않는 살아 있는 공부.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자신과 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험난함과 편안함은 본래 마음속에 있지 않으니
뜬구름이 아득한 하늘을 지나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 왕양명,《범해(泛海)》부분
시인은 간신배의 모함을 받고 ‘용장’으로 유배되었다. 열악한 환경의 오지였다.
시인은 곰곰이 생각했다. ‘옛 성인들께서 지금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찌하셨을까?’ 그러다 ‘아! 해답은 성인의 말씀에 있는 게 아니었구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험난함과 편안함은 본래 마음속에 있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