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

오락기 옆 나무

by 기억나무

다수의 사람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하고 혹은 직접 경험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아들은 이 말의 뜻을 좀 일찍 깨달았다.

학교 앞 문방구는 처음엔 준비물을 사고 가끔 불량식품을 사 먹는 장소였다가, 작고 네모난 오락기가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학년 때 처음 오락기 재미에 빠진 아들은 일주일 용돈 오백 원 모두 오락하는 것에 탕진하고는 용돈을 가불 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그 당시 아들의 용돈 기입장 사용 내역은 오락 백 원이 대부분이었으니 등교하는 닷새 동안 하루에 백 원씩 꼬박꼬박 사용하고 어쩌다 쭈쭈바 하나 사 먹게 되면 용돈을 가불 해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었다.

오락엔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들의 손엔 가불 된 용돈이 쥐어졌다. 약속한 것은 지키는 아이였기에 그 약속을 믿었다.

등하굣길은 낮엔 그늘 한 곳 없는 그야말로 땡볕이라서 유난히 뜨거웠던 그날, 그 길을 혼자 걸어올 아들 걱정에 학교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얼굴을 보고 반갑게 나올 아들을 생각하며 정문에서 기다리는데 다른 아이들은 보이는데 아들은 보이질 않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오락기가 있는 후문 문방구가 생각이 나자 마음이 바빠졌다. 학교 모퉁이들 돌아서 후문 쪽으로 가까워지자 문방구 작은 오락기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오락에 집중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별 일없이 내가 예상한 장소에 있는 모습에 안도를 하면서도 약속을 어기고 오락을 하고 있는 모습에 기가 찼다. 슬그머니 뒤에 다가가서 오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아들은 그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락에 열중하고 있었다. 조용히 아들의 이름을 부르자 아들은 정말 깜짝 놀라며 온갖 감정이 다 섞여 있는 표정으로 날 멍하니 바라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기가 죽어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의 뒤를 따라오고 난 화난 걸 참느라 입 꾹 다물고 앞만 보고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 잘못했다는 아들의 사정에도 거짓말하고 엄마 속이는 아들과는 살 수 없다면서 집을 나가서 네 맘대로 살아보라고 했다 그때 아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으니 지금 그랬다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이런 협박을 듣고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그동안 맡겨놓은 용돈과 대회에서 받은 문화상품권을 달라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황당하고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모른 척 상품권을 꺼내주고 용돈은 은행에 있으니 지갑에 있는 얼마의 현금만 주겠다고 말하면서 현금을 주었다. 나에게 돈을 받아서 제 방으로 가더니 책가방엔 교과서를 넣고 보조 가방엔 여벌의 옷을 넣고 검은색 비닐봉지에 학용품을 넣는 모습을 방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둘째 딸아이는 오빠 뒤를 쫓아다니면서 나가지 말라고 울고 불며 사정을 하고 나에게 와서 오빠를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손을 싹싹 빌며 이리저리 눈물 바람 흘리며 뛰어다녔다. 책가방을 둘러매고 방을 나오는 아들에게 공부도 안 하고 오락만 할 거면 뭐 하러 가방을 가지고 가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니 엄마에게 돈도 달라하고 교과서도 챙긴 거라고 대답했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걸 겨우 참았다. 오빠가 쥐고 있는 검정 봉투를 잡고 우는 동생에게 아들은 다정한 목소리로 오빠가 보러 오겠다며 울지 말라고 동생을 달래고는 집을 나갔다. 잠시 뒤 어디로 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마음에 조용히 아들의 뒤를 쫓았다. 책이 가득 들어있으니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가방은 등에 붙어있고 양손에 보조 가방과 검정 봉투를 땅에 닿을 듯 말 듯 흔들거리면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집을 나가서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저 살림을 챙긴 것이 기가 막혔다. 집 나갈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행동에 놀랍기도 한 복잡한 감정으로 뒤를 밟았다.

짐을 바리바리 들고 터덜거리면서 걷는 아들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아들이 도착한 곳을 확인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동네 문방구 오락기 앞이었다. 그 짐을 이고 지고 결국 간 곳이 오락기라니. 오락 때문에 이 사달이 일어났는데 저놈의 자식은 무슨 생각일지 궁금했다.

당장이라도 가서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었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나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다. 한참을 오락기 앞에서 열심을 내던 아들은 문방구 전등이 켜지자 꼬마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문방구에 들어가서 짐을 더 늘려서 나왔다. 그리고 이번엔 슈퍼로 들어가더니 문방구에서 늘려 나온 짐보다 더 큰 짐을 늘려서 나왔다. 저게 뭘까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샀나 궁금했지만 앞으로 나설 수 없었기 때문에 참고 그냥 지켜봤다. 다시 오락기 앞으로 온 아들은 오락기 옆에 줄줄이 세워놓은 짐을 다시이고 지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날도 어둡고 짐도 처음보다 더 늘어났으니 동네 사람은 저 아이가 왜 저러고 다니는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들의 뒷모습을 따라서 시선들이 옮겨 다녔다. 아이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어깨는 더 숙여지고 시선은 땅을 보고 걸음걸이는 빨라지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들은 집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전화해서 모른 척하고 대문을 열어주라는 말을 하고는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나도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자 거실 바닥에 검정 봉투가 놓여있고 남편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감추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아들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동생의 손을 잡고서 날 보고 있고, 둘째 딸아이는 오빠의 손을 꼭 잡고 기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눈이 씰룩거리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참느라 애쓰면서 아들에게 퉁명스럽게 왜 집에 있냐며 저건 또 뭐냐고 묻자 아들은 무릎을 꿇더니 내 앞에서 엄마 잘못했다면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울먹거렸다. 덩달아 딸아이는 오빠 옆에 같이 무릎 꿇고 앉아서 오빠를 용서해 달라며 집에 들어오게 허락해 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고 오락하고 싶으면 엄마에게 허락받고 하겠다는 약속의 말을 듣고 나서 아들을 안아주었다.

아들을 품에 안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아들 뒤를 쫓으면서 느꼈던 불안함과 두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들도 편안해졌는지 내 품에서 빠져나오면서 내가 궁금해했던 늘어난 짐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문방구에 갔던 날 동생이 갖고 싶다고 말한 양면 색종이와 캐릭터스티커를 사고 동생 것을 사고 나니 엄마 아빠도 좋아하는 걸 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너편 슈퍼에서 아빠가 평소에 자주 먹었던 은단 껌 한 통과 엄마가 좋아하는 감자칩 과자 한 봉지 동생이 좋아하는 막대사탕 그리고 저도 풍선껌이 먹고 싶어서 제 것도 같이 샀다고 말한 후에 남은 돈 이라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이런 걸 사들고 올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내가 잘못했으니 차마 빈손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가족들이 좋아하는 걸 생각하면서 샀다고 한다. 내 아들이지만 너무 기특하단 생각에 꼭 안아줬더니 아들은 울먹거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집을 나갔는데 갈 곳도 없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 하고 싶은 건 오락이라서 오락을 하다 보니 날도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니 창피하고 짐을 들고 다니는 것도 힘들고 무서웠다면서 아들이 했던 말은 우리 집에 선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대사가 되었다,

“엄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집 나가면 개고생인 것 같아요. 집은 절대로 나가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이 말을 들은 남편과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다가 배를 움켜잡고 한참을 또 웃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은 거며, 그 말의 뜻을 저 조그만 녀석이 몸소 깨달았다고 말하니 누구라도 그 순간 웃지 않고는 못 배겼을 거다,

그날 온 가족이 함께 저녁밥을 먹은 후에 아들이 사 들고 온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색종이 접기도 하고 풍선껌을 누가 더 크게 부나 내기도 했다. 행복함이 풍선껌처럼 부풀어 올랐다.

집에 있으니 좋은 아들과 오빠가 집에 있으니 좋은 딸아이와 두 아이와 아내가 집에 있으니 좋은 남편과 내 아이들과 남편이 집에 있으니 좋은 나였다. 아들의 솔직하고 귀여운 고백에 우리 모두 한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란 게 감사하고 행복한 저녁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