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나무
아홉 살인지 열 살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부턴가 여름방학이 되면 아버지는 포항 송도바닷가 앞에서 횟집 장사를 하는 아재 집으로 날 보내셨다.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아재는 여름방학마다 찾아오는 날 친딸처럼 예뻐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이미 다섯 아이의 아버지셨던 아재는 내가 가면 항상 우리 큰딸 왔냐며 반겨주셨다. 그 해 여름에도 난 어김없이 방학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포항행 버스에 올라탔고 그 집의 큰딸이 되었다.
아재 집은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늘 집안에 모래가 있어서 내가 그 집에 들어서서 제일 먼 저 하는 일은 청소였다. 까실 거리는 모래알이 밟히는 게 싫어서 열심히 쓸고 닦았다.
그날도 집안의 모래를 쓸어내고 있는데 아재가 커다랗고 새카만 튜브를 마당에 내려놓고는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오늘 낮 장사는 한가해서 아줌마 혼자 하기로 하셨다며 바다에 가서 같이 놀아준다고 하셨다. 청소가 아직 덜 끝난 상태라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와 동생들의 성화와 아재의 재촉에 따라나섰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불판 위 삼겹살이 익어가듯 내 등판도 익어가고 있어도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었다. 초록빛과 푸른빛 옥색을 서로 뒤섞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이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내 옆으로 있는 친구와 동생들을 쳐다봤다.
이 녀석들 왠지 즐거워 보인다, 나의 사투를 숨기기 위해서 애써 웃기는 하지만 얼굴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실룩거려진다. 저만치 수평선이 가까워지자 빨갛고 동그란 통이 보인다. 순간, 나의 작은 몸이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눈앞에서 파란 하늘과 구름이 사라졌다. 익어가는 듯 따가웠던 등줄기가 시원해지고 바닷속으로 들어오는 태양의 빛줄기가 보이더니 금세 사라지고 허우적 대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친구의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나의 비명소리를 친구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파도가 밀려와 나의 입을 턱 막아버릴 때 다시 바닷속 빛줄기가 보이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아재는 나의 팔을 시커멓고 커다란 튜브 위에 턱 걸쳐주었다. 죽다 살아났다는 소리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일 거다. 그 여름 난 그 바다에서 죽다 살아났다.
죽다가 살아난 여름의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뜨거워서 끈적거리는 모래사장, 뜨거운 태양볕, 뜨거운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씨끄러운 소리들. 그래서,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차가워서 까실거리는 모래사장, 따뜻한 태양볕, 겨울바람에 더 차갑게 부서지는 파도가 좋다.
겨울날 망양 바닷가. 지금도 가끔 겨울에 그 바다를 찾아가서 걷다 보면 그날의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바닷가에서는 열여덟의 내가 된다. 겨울바다는 눈이 시리게 차갑고 깨끗하게 보였다. 수평선 끝에 걸려 보이는 희뿌연 선들이 얼음 같이 보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있는 그곳에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서 연결해주고 있는 것 같은. 그 오묘한 형상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말로 형용할 수 없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부터 파도가 하얀색 거품을 몰고 오더니 내 발 앞에 펼쳐놓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속이 후련했다. 두려움이 가슴 한편에서 꿈틀 되었지만 그 감정조차도 그 순간은 무섭다기보다는 묘한 긴장감을 되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사는 건 이렇게 두려움이지만 그 긴장감을 이겨내야지 이런 속 시원한 후련함도 느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