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

나무 도시락

by 기억나무

도시락을 조금 특별하게 기억한다. 네모반듯한 통에 쌀밥과 반찬이 아니라 병 사이다 한 상자, 옛날 통닭 튀김 여섯 마리, 떡 한 상자, 과일 한 상자, 과자 한 상자. 단체 여행객 도시락이 아니라 내가 정말 부끄러워했던 나의 도시락이다. 과자 이름이 뭐였는지 무슨 과일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날 아빠와 아빠 친구분이 작은 손수레에 싣고 왔다는 사실이다.

파란 하늘색과 꼭 닮은 파란색 모자와 파란색 머리띠를 두르고 이웃집 언니에게 빌린 한복을 챙겨서 집을 나서면서 다른 소풍날이나 행사 날처럼 오늘도 나 혼자 있겠구나, 생각하며 빠진 준비물이 없는지 재차 확인하고 씩씩하게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청명한 하늘에 온 세상의 모든 국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파란색 모자 하얀색 모자 사이사이에 알록달록 모양내고 나온 동네 사람들 사이로 비눗방울들이 날아다니고 신나는 음악 사이에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온 동네방네 퍼지고 있었다.

이웃집 언니에게 빌린 한복이 바닥에 질질 끌려서 넘어질 것 같아도 창피하지 않았다. 내가 부채를 펼치고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괜찮았다.

하얀색 모자를 쓴 친구에게 달리기 시합에서 졌어도 분하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더 빠르다는 걸 그 친구도 알고 있고 열심히 응원하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손뼉 치면서 기뻐하시는 걸 봤으니 그걸로 괜찮았다.

부모님과 손잡고 뛰기란 쪽지를 보고 당황했지만 창피하지 않았다, 선생님과 손잡고 뛰어서 이등 도장을 받았으니깐 그걸로 괜찮았다.

중간중간 목이 마를 때 친구들은 가족 곁으로 가서 물을 마시고 왔지만 부럽지 않았다,

아침에 미리 넉넉하게 담아둔 물통이 있었고 운동장엔 얼음물 장수가 있으니 사 먹으면 되니깐 그걸로 괜찮았다.

쉬는 시간마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시는 어른들이 계셔서 그걸로 괜찮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이 터지고 친구들은 삼삼오오 가족을 찾아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러 이동했지만 괜찮았다, 다행히 도 온갖 먹거리 노점상들이 있으니 내가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으면 되겠구나, 생각하니 그걸로 괜찮았다.

교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을 때 낯익은 모습들이 보였다, 나팔바지에 푸른색 셔츠를 입은 아빠와 아재가 손수레를 끌고 교문을 들어서고 있을 때 나를 발견하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향해서 전력 질주했다. 그리고 손수레를 봤다.

세상에 이게 다 뭔지. 혹시 장사하려고 오셨나. 제일 중요한 대결이 남아 있었지만, 집으로 도망칠까 생각을 했다, 아빠는 점심시간 맞춰서 먹을 것을 사 왔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함께 온 아재가 아빠가 뭘 사가야 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많이 샀다면서 그래서 손수레에 싣고 왔다면서 허허 웃으셨다. 전혀 웃기지 않는 상황인데 왜 웃는 건지.

이게 나의 도시락이란 말이지? 이 상자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 엄마들이 정성스럽고 예쁘게 찬합에 담아놓은 김밥이며 과일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도시락들 앞에서 나의 도시락을 보면서 신기한 듯 구경하는 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친구들 눈에는 도시락이 아니라 장사꾼으로 보였을 것이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이런 거 누가 먹냐며 난 안 먹을 테니 가져가라고 짜증을 부렸다.

아빠와 아재는 당황해서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재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피하지 이렇게 가지고 왔으니 형이 이해해요.

그래도 아빠는 꿋꿋하게 다 같이 나눠 먹으라고 많이 사 왔다면서 너 가 먹지 않을 거면 동네 사람들에게 주겠다며 손수레를 아니 나의 도시락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점심을 드시려고 하셨던 선생님께서 달려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최악이었다.

이런 꼴을 들켜버려서. 아빠는 모자를 벗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이 나의 아버지란 사실을 크고 분명하게 말하더니 손수레에 실려있는 나의 도시락을 가리키며 많이 가져왔으니 선생님들도 나눠 드시라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시더니 아빠에게서 손수레 손잡이를 이어받아 선생님 자리로 직접 끌고 가셨다,

그리고 아빠처럼 크고 분명한 소리로 다른 선생님들께 나의 아버지께서 사 온 음식들이라고 말하셨다, 선생님들께서는 감사하다며 박수를 치며 같이 앉아서 드시자고 아빠에게 권했지만 아빠는 내 눈치를 보느라 사이다 한 병 마시고는 뒤돌아 가셨다,

뒤돌아 가시면서 동네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 음식을 저렇게 많이 가지고 왔냐면서 나는 좋겠다고 말하자 아빠는 뭘 어떻게 도시락을 준비할지 몰라서 애가 좋아하는 걸로 사 왔다고 대답하면서 돗자리 사이사이를 지나갔다,

어른들은 도대체 내가 왜 좋겠다고 말할까 본인들이 이런 창피를 당해보지 않아서 말을 쉽게 한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렇게 나의 도시락은 선생님들의 도시락이 되었고 그날의 도시락은 온 동네 사람들에게 특별한 도시락으로 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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