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어린 시절모두가 어둡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유쾌했고 엄마는 꽤나 낙천적이었다.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은 날엔 하루종일 웃음이 담장밖을 타고 넘어갔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집은 뭔 재미있는 일이 그리도 많아? 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군대이야기를 자주 했고, 엄마는 ‘옛날옛적 신랑각시‘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이야기 하나가 끝나면 ”또 해줘 아버지“ "또 해줘 엄마" 소리를 하곤 했다. 조르면 몇 개가 되었든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을 땐 지어서라도 했다. 엄마의 야기기 중 기억나는 이야기 하나는 대강 이러하다.
옛날 옛적에 결혼한 첫날밤을 맞은 신랑각시가 있었단다. 새신랑은 밤에 너무 배가 고프더래. 낮에 감나무에서 봐 두었던 홍시가 계속 생각이 났지. 색시한테는 “측간에 다녀오겠소” 말하고 감나무에 올라갔어. 어두운 밤에 홍시를 열심히 더듬고 있는데 아뿔싸. 어쩌면 좋아. 색시가 감나무에 올라오는 거야. 배가 고픈 색시도 신랑이 화장실 간 사이에 홍시를 먹으려고 올라온 거지. 신랑은 나뭇가지사이에 숨어서 색시가 홍시를 찾느라 더듬거리는 손에 홍시를 얼른 쥐어 주었단다. 색시는 홍시 하나를 먹고는 내려갈 마음이 없는지 손을 뻗어 홍시를 찾길래 또 하나를 얼른 쥐어줬겠지? 색시는 홍시 두 개를 먹고도 손을 내밀어 홍시를 찾더래. 보다 못한 신랑이 그랬다는구나. “색시 이제 홍시는 더 이상 없으니 내려갑시다.”그러자 색시는 부끄러워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졌다는구나.
이야기 한두 개로 만족해 본 적이 없어서 엄마는 이야기를 지어내셨다. “옛날옛적에~” 어린 나이에도 엄마가 지어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그 신랑 각시시리즈에 푹 빠지곤 했다.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며 야단도 들었지만 이야기를 들려줄 때만큼의 엄마 목소리는 상냥했다. 옛날이야기뿐만 아니라 질문도 많았다. “왜? 엄마 왜?”'왜'라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혼날 만큼 질문을 달고 살았다. 엄마의 대답은 다정한데 늘 약이 올랐다.
“엄마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로 가는 거야?”
“글쎄다. 내가 나중에 비행기 운전하는 사람한테 물어봐서 가르쳐주마."
” 하늘이 저렇게 넓은데 어떻게 찾아가?"
그것도 물어봐서 가르쳐주마"
“엄마? 엄마는 왜 깜깜할 때까지 일해? 보여? 안보이잖아.”
“생각해 보고, 생각나면 얘기해 주마.”
속 시원하게 답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나중에 물어봐서 가르쳐 주마였고, 생각나면 얘기해 준다였다. 심지어는 장날에 장터에 가면서 “엄마 나 신발...” 오냐 사다 줘야지 “ 목이 빠지게 기다린 나에게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했다.”빛나야 신발장사가 죽었다더라 “
”엄마 호떡 사다 줄거지? “
”그럼 사다 줘야지 “ 역시나 빈손인 엄마는 호떡장사가 죽어서 못 샀어 “ 약이 오른 나는 엄마가 태연하게 거짓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목소리는 상냥한데 본질은 회피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상대는 약이 오르고 도대체 진지함이라고는 안 느껴지는 비열함 같은 것 말이다.
아버지와 엄마는 술이라는 방해꾼만 없으면 그런대로 천생연분 흉내를 내는 쿵짝이 잘 맞는 부부지간이었다. 엄마의 곁에는 늘 마늘 까주는 아버지, 채소를 다듬거나 씻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한겨울에는 먼저 일어나 큰 솥에 물을 끓이고, 부엌을 데워 놓으면 엄마는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 부엌으로 가곤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의지했고, 아버지는 엄마를 사랑했던 것이다. 내 기억회로에 저장된 유일한 행복한 시절이다. 지금의 깨알 같은 자존감은 그나마 그때 만들어졌을 것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자존감이다. 아프고 슬프기만 했던 어린 날에도 봄날이 있어서 지금을 견디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