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경찰 생활을 접고 장손의 의무를 위해 돌아온 아버지는 그 무게를 견디기엔 너무 여린 사람이었나 보다. 몸이 아픈 아버지(할아버지). 편협스런 어머니(할머니)와 줄줄이 딸린 동생들 그 어디에도 어린 부인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었다. 층층시하라 했던가. 시누이 둘은 이간질하기 바쁘고 시동생 둘은 살림을 거덜 내느라 바빴다.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동네에서도 다 알정도였다.
아버지의 술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술에 취한 날인 거고 엄마에게 온갖 욕설이 곧 시작되리라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아버지의 18번지 "두마안강~~ 푸른 물에~노 젓는 배엣 사공~ 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후다닥 흩어져 쥐 죽은 듯이 있어야 했다. 노래일절이 끝나면 "야 ~홀아비 딸년아(엄마를 부르는 소리) 시작해서 아버지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나온다. 술 취한 개라고 했던가. 상종을 못하는 엄마는 그 모든 언어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모지락스런 남편이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입으로 술을 깨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모든 스트레스를 쏟아 내기 전까진 잠도 자지 않았다. 아버지의 주사는 엄마에게 심신이 병들어가는 고통을 주었다. 주사가 손발이 아닌 입에 한정된걸 그나마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그것도 발전이 되는지 나중엔 폭력을 쓰기도 했다.)
아침이 되면 눈뜨자마자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께 그제야 엄마는 참았던 화를 폭풍처럼 쏟아내곤 했다. "원수 같은 인간... 술 취한 개"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 간밤의 폭언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시비를 거는 엄마를 보며 싸움이 번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버지는 단 한 마디의 변명이나 언성도 없이 엄마의 잔소리를 받아 주었다. "너희 엄마가 화가 많이 난걸 보니 내가 실수를 많이 했나 보다. 통기억이 없으니 원 허허허" 지나치게 이중적인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행동을 아는 엄마는 간밤의 스트레스를 시원한 욕지거리로 풀었다.
철들고 난 후의 유년 시절 기억 속에 아버지의 술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놈의 술 때문에 위장에 구멍이 나기 전까진 말이다. 엄마에겐 아버지 보다 술이 원수였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는 술자리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고 동네 어디서든 혹은 외부에서든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다. 엄마는 오빠를 앞세워 늘 아버지를 감시했고 술을 덜 마실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일 년에 제사가 열 번이고 종갓집에서 지내는 시제라는 제사와 농사일까지. 어린 내 눈에 아버지는 도움은커녕 문젯거리만 안겨주는 사람 같았다. 여섯 자식이 놓지 못하는 유일한삶의 끈이었으리라. 그나마 어린 시절기억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것은 순전히 엄마의 게으른 듯 낙천적인 성격 탓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배운 건 생존능력이었다. 그리고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라는 것도. 하루는 내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