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엄마가 아닌 아버지와 학교 입학식에 갔다. 휜 눈이 펑펑 오는 추운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3월 초인데 이례적인 날씨였다. 그날을 잘 기억하는 이유는 엄마의 새하얀 목도리 때문이다. 어깨를 다 감쌀 만큼 넓고 푹신한 목도리였는데 어렴풋이 엄마가 많이 아끼는 거였다는 기억이 있다.
입학식 날 아침 코흘리개인 내가 집을 나서기 바로 직전 엄마가 당신의 하얀 목도리를 내게 둘러주었다. "아버지랑 잘 다녀와" 세상을 다 가진 듯 심장이 벌렁거렸다. 엄마를 멋져 보이게 만들던 그 목도리를 내가 두르게 될 줄이야.
유난히 체구가 작은 나였다. 당시의 신체기억은 모르겠으나 6학년 키가 140이 채 안되었고 몸무게는 29 킬로였으니 1학년 아이의 체구가 오죽했을까 싶다. 눈 오고 바람이 매서우니 허리를 꼿꼿이 펴기가 힘들었다. 아버지가 손을 잡아주셨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마음에 불이 확 지펴지는 따뜻한 체온. 고사리 같은 손이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 온전히 들어가 보호받는느낌이었다.
운동장엔 벌써 많은 아이들이 와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교실로 먼저 데려가셨고 다시 운동장으로 나와 줄을 섰다. 학부모들은 운동장 끄트머리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내가 서있는 줄 앞에는 낮이 익숙한 선생님이 서계셨는데 아버지 친목회날이면 집에 와서 식사를 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이 학교 선생님인 줄 그때처음 알았다. 더구나 학교생활 첫 담임이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악명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른바 체벌이 몸에 밴 선생님이었던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등짝. 발바닥, 손등을 많이도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생활 이후 집으로 친목회 모임 왔을 때 숨어버린 일이 후회스럽다. 아버지에게 하소연하거나 이르기라도 해 볼걸.
앞날을 알 수 없던 순수하기만 했던 꼬맹이는 입학식 내내 엄마의 하얀 목도리만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그것은 초코파이에서 느낀 우월감과 다른 처음 갖는 자존감같은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내손을 꼭 쥔 채 말씀하셨다.
"네 이름을 누가 지어줬는지 아냐."
"..."
" 이름을 올리러 면사무소에 갔는데 면서기가 몸이 아픈 환자였단다. 골골하며 오늘 낼 한다는 소문이 있던 사람이었지. 그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네 이름을 바꾸기로 맘먹고 지금의 이름이 된 거다. 그러니 이름대로 잘살아야 한다" 처음 알았다. 학창 시절 놀림을 많이도 받았던.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평범하지 않은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걸 말이다.
3월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 탓에 엄마의 품속 같은 목도리 안에서 아버지 손이 참 따뜻하네! 만 생각했다. 걸어오는 40여분 남짓 을 말없이 손만 잡고 왔다.
이름도 아버지가 지어주고 입학식도 아버지 손을 잡고 가서 그런가 살아오면서 유달리 아버지와의 정이 애틋했다. 엄마 없이 결혼식을 치른 막내딸이 못내 가슴 아팠는지 고모가 그런다."아버지가 참 많이 우시더라. 잘살아야 한다" 나도 비행기 안에서 많이 울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버지 인생에서 술이라는 단어만 지우면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솔직히 술이 본성을 깨우는지 술을 빙자한 아버지의 나약함인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뭐라고 대답하실까.' 웬수 같은 인간'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