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구나 너는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안 계셔서" "엄마 잘못은 아닌데 왜 미안해" "그러게 왜 미안할까. 그냥 미안해."
아이에게 외가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이말대로 그것이 나의 잘못도 아닌데 잘못인양 느껴지는 건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알량한 양심이 남아 있어서인가.
성인이 되어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마음은 아직도 독립을 못한 못난 자식 같기만 하다. 한창 예쁘게 살아갈 나이인 스물네 살 추운 겨울에 엄마를 잃어서인가 보다.
폭설로 무릎까지 빠지던 날 엄마를 보냈던 기억 때문에 이날 이때까지도 겨울이 지독히 싫다. 스물네 살이면 어린 나이일까. 어리지 않은 나이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기다리면 데리러 와줄 것만 같던 유년시절의 어느 하루에 멈춰져 있는 듯하다. 반 백을 살아낸 나이인데도 말이다. 흘려보내려 한다. 그만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싶은 이유이다. 엄마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나의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착한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움을 품고 살았다. 왜였을까? 경제력 없는 가난한 가장을 만나 생의 마지막날 까지도 좋은 것 하나 가져보지도, 누려보지도 못한 바보 같은 나의 엄마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엄마가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었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엄마는 아버지로부터 얻은 지독한 외로움과 결핍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살았는가 싶게 엄마에 대한 애증 또한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깨진 물독 같은 내 마음을 드러내고 비워냄으로써 자유롭고 싶다. 사슬을 끊어낸 짐승처럼 숲으로 가고 싶다. 결핍을 모르던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기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부디 단단한 성장으로 메꿔지길 바라본다.
그해 일곱 살 겨울이 기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