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아버지와 초코파이

그 겨울 끝자락

by 빛해랑

무너져가는 시골 담벼락엔 늘 아이들이 몰려있었다. 허물어져가는 돌담 하나에서 수십 가지 놀이가 만들어졌다. 말뚝박기, 가위바위보게임, 술래잡기가 그것이다.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 해가 짧고 밤이 길다. 어둑해질 무렵까지 집 앞 골목은 아이들로 늘 시끌벅적했다. 그날도 낮부터 동네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던 중이었다


골목 끝 어귀에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아...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오시는구나! 아버지 얼굴을 못 본 지가 한 달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아마 겨우내 아버지는 집을 비우신 걸로 안다. 오랜만이라 어색했을까. 반가움에 얼어버린 것인가. 그 자리에 멀뚱히 서서 휘청휘청 걸어오는 아버지를 쳐다만 봤다. 나도 오빠도.


가까이 오시는 아버지 손에 상자 꾸러미가 들려있었다. 친구들을 지나고 오빠를 지나치더니 작은 내 두 팔에 척 안겨주신다. 파란 상자에 갈색의 빵. 그리고 빵사이에 하얀 무언가가 있던. 글자를 모르던 때라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오빠가 아닌 내손에 안겨준 사실에 흥분했다. 아버지보다 반가운 과자상자였지만 부끄러워 애써 감정을 숨겼다. 남동생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언니가 상자에 적힌 글씨를 또박또박 힘주어 읽어 주었다."초코파이!"


그렇다. 그해는 1974년 나의 7살 마지막 겨울을 보내던 해이자, 오리온 초코파이가 출시된 해였다. 아버지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 동안 삼판이라 불렸던 벌목장으로 돈을 벌러 가신 거였다. 아버지의 부재는 겨울이 다 지나도록 이어졌었다. 겨우내 노동으로 혹사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육 남매의 간식으로 사 오신 거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초코파이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이 묻어있는 슬픈 과자였다는 것을....


당시의 초코파이는 상자가 꽤나 컸고 양도 많았었다. 암묵적으로 나는 초코파이의 주인이 되었다. 동생이 가장 빠르게 줄을 섰고, 과자 주인이 안된 것에 화가 난 오빠도 별수 없이 줄을 섰다. 과자 한 상자에 뭐라도 되는 양 두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다. 내게 잘 보여야 한 개씩 먹을 수 있었던 초코 파이가 존재감 없었던 다섯째인 내게는 엄청난 위력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껴먹을 줄 알아서인지, 우쭐한 기분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서였는지, 하루에 한 개씩만 먹었다. 물론 초코파이가 내손에 있는 한 오빠도 동생도 내겐 어림도 없는 아랫것들이었다. 그해 일곱 살의 겨울은 아버지가 사다 주신 초코파이가 있어서 견딜만했다. 오빠나 언니가 놀이에서 왕따를 시켜도 화나지 않았고, 동생이 못되게 약 올리고 되려 엄마한테 고자질해도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초코파이 주인은 나였으니까. 그리고 새해를 맞이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