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 생일에 딸아이가 책을 선물했습니다. 제목 한 줄에 백 마디의 말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뭉클함이 느껴졌어요.
'그냥 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정년퇴직이 몇 년 남지 않은 남편은 요즘 우울합니다. 노후준비랄 것도 딱히 없는 것도 그렇거니와 두 아이 모두 독립을 계획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만만치 않습니다.
"나는 정말 당신이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딸아이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요. 첫머리에서 목이 메는지 "음... 음... "소리를 참느라 애를 씁니다." 나 물 좀" 하며 자리를 뜹니다. "너무 오래 당신의 행복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 같은 책입니다.
남편은 원래부터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사람입니다. 딸아이가 먼 곳으로 공부하러 떠날 때에도 책 한 권, 옷가지 하나하나를 정리하면서 몇 날 며칠 눈물을 훔치며 딸아이 방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던 사람입니다. 본인 역시 가족과 떨어져 공부했던 학창 시절의 경험이 있기에 한사코 멀리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일이지요. 꽤 여러 해 동안 집을 떠나 공부했던 딸아이는 늘 가족에게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곤 합니다. 특히 정 많은 아빠에게는 집에서건 밖에서건 몇 시간이고 앉아서 수다를 떨어줍니다. 남편은 딸아이의 마음 씀씀이에 늘 고마워하죠.
그런 딸아이가 아빠 생일에 고른 책입니다.
P43 삶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을 너무 극단적으로 여기지 않기를. 길에서 장애물을 만났다고 해서 그 길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위로 넘어가도 되고, 옆으로 피해 가도 되고, 저리 치우고 가도 되며, 다른 길로 돌아가도 된다. 난관에 봉착했다면 이렇게 외치자."다 방법이 있지"라고.
하늘이 늘 흐리지만은 않은 것처럼 당신에게도 지금보다 훨씬 괜찮은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그러니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아직 누리지 못한 즐거운 날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P93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다치거나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게 될지를. 당신, 진심으로 귀한 존재이다.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그냥 말해주고 싶었다. 모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친정 엄마가 토닥이는 말처럼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칩니다.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지난 세월 탓이 아니겠는지요. 돌이켜보면 맑은 날 보다 흐린 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늘 누군가와 함께였으면서도 혼자인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으로 지쳐 갈 때쯤 만난 어머니의 목소리 같습니다. 좌절감으로 무너지고, 자존감이 맨땅에 꽂힐 때.... 그런 부모의 모습을 딸아이에게 들켰나 봅니다. 반백이 훌쩍 지났어도 부끄럽고 민망하여 또 서럽습니다. 책을 받은 남편도 내 맘과 같았나 봅니다. 물을 마시고 돌아온 눈이 벌겋게 물들어 있습니다.
P127 때로는 억울하기도 했을 테고 쓸쓸하기도 했을 텐데. 그런 당신을 위해 그냥 누군가가 행복을 좀 오다 주워줬으면 좋겠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이불속에서 꺽꺽 울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식의 눈에 부모는 어떻게 비칠까요. 적어도 이런 나약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딸아이의 눈엔 아빠가 참으로 힘겨워 보였을 겁니다. 지극히 평범한 월급쟁이 아빠가 7년이나 미국 유학을 뒷바라지했으니 왜 안쓰럽지 않았겠냐 말입니다. 그래서 생일 편지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썼나 봅니다.
딸아이의 편지 한 구절을 옮겨봅니다.
아빠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힘들었던 순간, 버거웠던 순간들도 많았을 텐데 그 모든 시간을 잘 견디고 우리 곁을 지켜줘서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이 책을 통해서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아빠가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조급해하지 말고 아빠가 하고 싶었던 모든 일들도 다 이룰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딸에게 응원을 받아서 일까요. 단순한 남편은에너지가 솟는지 멋쩍게 웃습니다. 딸아! 우린 가난한 부모인데 생각마저 단순하여 바람에 스러졌다 일어나는 풀잎처럼 꼿꼿이 하늘을 본단다. 그러니 아빠 걱정은 말거라. 네 아빠는 내가 잘 알지. 엄마보다 더 단순해서 금세 씩씩해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