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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일 Mar 10. 2023

강남역 일대 하수맨홀 뚜껑 비산(飛散)의 진짜 문제

내수 침수가 아닌 한강물이 역류해 들어올 수도

지난해 8월 8일, 서울 강남의 집중호우로 열린 하수도 맨홀로 남매가 빠져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서울시가 사고 직후 발 빠르게 저지대의 하수 맨홀에 추락방지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하고 일부 설치도 하고 있지만, 벌써 올여름이 걱정이다. 

     

일본의 사례를 찾아보니까, 1998년 9월에 고치시(高知市)에서 시간당 110mm의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역시 두 사람이 하수도 맨홀에 빠져 죽은 사고가 있었다. 일본은 그 이후 하수도 맨홀에 추락방지시설 설치기준을 마련하고 꾸준히 설치해오고 있다. 이는 우리보다 도시 인프라를 먼저 확충한 해외 대도시들의 재난·사고와 관련한 문헌조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말해준다. 조금 먼저 챙겨봤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현업에 쫓기는 공무원들이 국내외 문헌을 직접 조사하기는 쉽지 않다. 통상 학회나 전문업체에 용역을 의뢰해 조사하는데, 발주청 공무원이 몰라서 챙기지 않는 내용까지 이들이 세세히 보고하지는 않는 듯하다. 결국 공무원이 많이 알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공무원의 부족한 전문성을 산하 연구원에서 보완해주면 도움이 될 게다. 특히, 서울시 정책은 전국 지자체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산하 서울기술연구원에서 서울시 기술 정책에 관해 심층적인 국내외 문헌조사를 시행해서 보완했으면 한다.

     

한편, 지난해 맨홀 뚜껑 사고는 기술적으로 또 다른 큰 문제가 있다. 강남역 일대는 고지(高地)배수로와 저지(低地)배수로로 배수 체계가 구분되어 있다. 고지배수로는 하천의 홍수위보다 높은 상류 지역의 하수관로가 저지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을 때, 상류 지역의 빗물만을 처리하기 위해 설치하는 하수관로를 말한다. 고지배수로는 하수관로의 높이차에 의해 발생하는 중력의 힘으로 빗물이 자연적으로 흘러 하천으로 배출된다. 이와 달리 저지대의 빗물을 처리하는 저지배수로는 자연배수가 되지 않아 펌프를 사용해서 강제로 배수한다.

      

행안부의 ‘재해예방을 위한 고지배수로 관리지침(2012년)’에 따르면, 저지대 구간을 통과하는 고지배수로에 저지배수로를 연결하거나 일반 맨홀을 설치하면 이를 통해 물이 역류할 수 있다. 따라서 저지배수로와 고지배수로를 철저히 분리·차단하여 설치하고, 맨홀은 체결식 압력 맨홀을 사용하여 맨홀 뚜껑이 열려 물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중간에서 맨홀이 열리면 그만큼 고지배수로 내의 압력이 낮아져서 빗물을 하류로 밀어내는 힘을 잃어버려 관로의 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2015년 1월에 서울시가 발표한 ‘강남역일대 배수개선대책’의 주요 내용 중의 하나로 강남역 주변 저지대를 통과하는 고지배수로를 저지배수로와 완전히 분리하여 차단하도록 했다. 그런데 지난해 고지배수로의 체결식 맨홀 뚜껑이 압력을 못 견디고 열리고 말았다. 이를 통해 통행인만 빠져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고지배수로의 빗물이 역류함으로써 저지대의 침수를 가중시킨 것이다. 열린 맨홀 뚜껑을 통해 상류 지역의 빗물이 역류하였고, 더욱 심각한 것은 하천 수위가 높을 때는 하천의 물이 저지대로 역류하여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강남역 일대의 수해 방지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뜻한다. 서울시와 구청이 정말 제대로 챙겨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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