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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일 Mar 23. 2023

서울역 아파트 기둥 손상에 부쳐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서울역 근처 한 아파트에서 기둥이 파손되었다. 2017년에 완공된 굴지의 건설사 아파트로, 6층에서 25층으로 지어졌고 1,341세대가 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가 흔들렸다고 한다. 필로티 부분의 기둥에서 미장재(대리석)가 떨어지고 콘크리트가 파열된 손상 상태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아파트 곳곳에 균열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사고 직후 서울시와 구청, 시공사, 기술사 등 전문가들이 긴급히 현장점검을 하였는데, 손상된 부분이 힘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이라 철거해도 건물 안전에 영향이 없다고 한다. 다만, 주민 불안을 고려해서 임시 지지대를 설치하고 정밀안전진단을 할 계획이란다. 그런데 썩 믿음이 가지 않고 마뜩잖다.



힘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파손된 것은 ‘기둥’인데 왜 ‘비내력벽’이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떻든)이 파손되면서 아파트 전체가 흔들렸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콘크리트 상부에 허용범위 내의 처짐이 발생해 기둥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비록 기둥은 파손되었지만, 그 원인이 된 처짐은 허용범위 이내니까 건물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 같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기둥과 들보가 하나의 구조체로 연결되어 들보를 통해 전달되는 하중을 이 기둥이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요컨대 비내력벽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손상된 기둥을 보면, 콘크리트가 파열되고 철근까지 바깥쪽으로 휘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둥의 파열을 막아주는 띠철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부실 공사의 냄새가 난다.


와우아파트(1970년, 34명 사망), 삼풍백화점(1995년, 502명 사망), 화정 아이파크(2022년, 6명 사망) 등 건축물 붕괴 참사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부실 공사의 망령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굴지의 건설회사에서 만든 브랜드 아파트가 이 지경이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국내의 건설생산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고도경제성장기에는 빨리 많이 만드는 게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잘 만들어 달라는 게 시대의 욕구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건설생산시스템만큼은 잘못된 관행을 떨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특히, 감리제도가 그렇다. 세계적으로 이윤보다 품질과 안전을 앞세우는 시공회사는 단연코 없다. 그래서 규정에 적합한 자재로 도면과 시방서에 따라 제대로 시공하는지 옆에 붙어 일일이 감시하는 게 국제 표준이다.


국내 민간 아파트는 사업계획승인권자(구청 등)가 감리회사를 지정하는데, 그 투입 인원이나 감리 수준이 국제 수준에 못 미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감리 부재(또는 부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곤 하지만, 근본적인 개선에 이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만다. 감리 비용이 추가 비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공분야조차 이를 낭비 요소로 보기도 한다.


종종 아파트에 하자나 중대 결함이 있어도 아파트값 하락을 우려해 쉬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건설회사는 주민들의 이런 약점을 악용해 배짱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공사를 제대로 하도록 감시하는데 비용을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최근에 아파트 입주 전에 입주자들에게 사전 점검할 기회를 주고 있지만, 사실 그것도 책임을 입주자에게 전가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왜 시공회사나 감리회사가 해야 할 일을 내용도 잘 모르는 입주민들이 해야만 하는지 답답한 일이다. 잘 만들어 놨으니 이를 확인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자 투성이 상태에서 입주자가 대신 하자를 찾아 정리해 제출하면 하도급 회사에 지시해서 고쳐 주겠다는 것으로 변질되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뿐만 아니라 안전점검도 문제다. 앞의 아파트는 시설물안전법 상 2종과 3종 시설물이 혼재하고 있다. 아파트의 정기점검과 정밀점검 시행 기록을 보면 모두 A등급을 받았다. 특히 정밀점검은 정부 산하 최고 안전진단 전문기관이 시행한 것으로 나온다. 지난 2018년 강남의 한 빌딩도 불과 수개월 전에 A등급을 받았음에도 인테리어 과정에서 기둥 파손이 발견되어 건축물 사용중단과 함께 E등급으로 진단받은 적이 있지만, 과연 건축물을 안전점검하면서 미장재를 벗겨내고 속살의 상태까지 보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다.


어떻든 서울시가 정밀안전진단을 한다니까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안전을 위해 다음 몇 가지는 꼭 했으면 좋겠다.


  1. 다른 주요 부분의 손상 여부를 미장재 제거 후에 육안 확인

  2. 건물 주요 부위에 계측기 설치 및 모니터링

  3. 예기치 않은 외력의 작용 등 하중의 변화 여부 확인

  4. 준공 도면과 시공상태의 비교 확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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