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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갈라파고스 건설관행에 대법도 한몫!

by 조성일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50126/130935401/1


기사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입니다.


... 대법원은 “시공사 측이 지키지 않은 기준은 ‘설계도서’가 아닌 ‘시공상세도면’”이라며 “사건 직후 철근 보강 공사를 진행해 안전진단 결과 안전성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


직전에 브런치에 쓴 글에 '시공상세도(shop drawing)'가 시공적부 판정의 기준이 된다고 했는데, 이 원칙에 관해 대법원을 포함한 법조계까지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이 낮은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양복 맞춤을 예로 들면, 이것도 건설공사와 같이 일종의 '도급 계약'입니다. 양복을 맞추려는 자(양복주인, 발주처)가 자기가 원하는 양복 모양을 직접 그리고(설계도면) 옷감, 단추 등등은 이러저러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글로 적어(사양서, 시방서) 양복점에 맡깁니다. 그러면 양복재단사(시공사)가 그 그림과 설명에 따라 양복을 만들어 주고 그 대가로 얼마를 받는 것으로 계약하게 됩니다.


주인은 양복을 재단사가 제대로 만드는지 자기 대신 일일이 감시해달라고 전문지식을 보유한 사람을 쓸 수 있는데, 이게 건설현장에서는 감리입니다.


대개 양복주인은 양복점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 양복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개 개념 위주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이 그림과 설명을 바탕으로 양복재단사가 공종 단계단계별로 어떻게 양복을 만들겠다는 그림(shop drawing)을 그려서 양복주인에게 이렇게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허락을 받습니다.


바로 이렇게 재단사(시공사)가 주인(발주처)에게 승인받은 도면이 시공상세도면이고, 이 도면이 사실상 최종 계약문서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그게 시공 적부의 판정기준이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여건이 바뀌어서(예를 들어, 계획했던 단추가 공급이 안된다든지) 재단사가 시공상세도면 등을 변경하려면 미리 그 변경내용을 주인에게 승인을 받아야겠지요(설계변경).


우리나라는 건설공사 계약 시, 대개 총액단가계약을 해서 공종별 단가 뿐만 아니라 총액도 확정적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설계 시 발주자가 도급공사의 추정금액(입찰예정가)을 산출하기 위해 도면을 매우 상세하게 그립니다. 그렇다고 이 설계도면이 시공상세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그 도면 그대로 작업해도 좋다고 승인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사용 가능하겠죠.)


설계 중에는 현장여건이 완벽하게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에 (특히, 땅을 파보기 전에는 100% 알 수 없는 지하여건 등) 설계도면은 설계도면일 뿐 시공상세도는 아닙니다. 현장에서의 적부판정은 명백히 시공상세도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국제표준입니다. 우리나라도 규정 상 시공상세도를 작성해서 발주처(또는 감리)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갈라파고스처럼 국제표준과 단절된 우리의 건설문화 뒤에는 법조계도 크게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걸 어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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