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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일 Apr 13. 2023

후진국형 사고라고?

그럼 선진국이 되면 없어지는 사고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하상세굴을 위한 수중 조사도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대형 홍수 이후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 선택적으로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하상세굴로 인한 붕괴 메커니즘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여름철 집중호우 때마다 많은 다리가 빗물에 쓸려가는 이유다. 조사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4년 동안 총 7,533개의 도로교가 홍수 시에 무너졌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인프라 노후화로 인한 붕괴사고는 후진국병이라기 보다는 인프라를 먼저 확충한 '선진국형 사고'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에 불법증축, 부실공사로 공사 중에 무너지는 게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다. 선진국에 접어들었다는 우리는 이것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미국의 사례를 봐도 유럽이나 일본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앓고 있는 거대 인프라의 '성인병', '노인병'을 우리도 그대로 답습해서 앓을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건강했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성년이 되고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여러 가지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데, 병원에 안 가도 건강했던 젊은 시절 생각만 해서 건강검진을 소홀히 하면 결국 병이 깊어져 사망에 이르기도 하고 급사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시설물도 똑 같다. 특히 교량은 댐에 이어 세상에서 제일 잘 무너지는 시설물이다. 그 다음이 건축물이고...


교량을 크기별로 규모를 나누어 1,2,3종으로 지정하고, 1종 외에 2,3종은 외관조사에 해당하는 정기안전점검(2,3종), 정밀안전점검(2종)만 의무화시켜 놨다. 3종보다 작은 교량은 아예 임의관리시설로 점검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아마 관리주체가 누군지 또 정확하게 몇 개나 있는지도 모를 수 있다. 더욱이 3종시설물 지정은 의무도 아니고 지자체장이 필요할 경우 지정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처벌 회피로 인해 앞으로 지정건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정기·정밀점검은 의사가 눈으로만 보는 진찰에 해당하는 검사인데 언젠가부터 그것도 '근접'이라는 규정이 삭제되어  어디서 보든 규제가 없다. 일본이 5년에 1회 모든 시설물을 점검하는데 '근접' 점검이 의무사항이다. 적어도 hands-on inspection이라고 해서 팔 거리 이내에서 세밀하게 살펴야 하는 게다. 그게 점검의 기본이다. 의사들도 그렇게 진찰한다. 그런데 지금 2,3종의 점검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순찰(patrol)에 불과하다.(최근 언론에 각 지자체가 점검 다니는 사진이 나오는데 그런 게 순찰하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실제 일본은 근접점검 외에 이런 방식의 점검을 ‘순시(巡視)’로 규정하고 있다.


다리가 무너지는 이유 중에 제일 많은 것은 '하상세굴(scour)'이다. 기초 주변 암반이 홍수 때 조금씩 깎여나가다가 결국 큰 홍수 때 무너지는 이 붕괴형태가 세상 모든 교량의 붕괴 원인의 거의 반 이상(almost more than half)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하상세굴을 위한 수중 조사도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대형 홍수 이후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 선택적으로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하상세굴로 인한 붕괴 메커니즘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여름철 집중호우 때마다 많은 다리가 빗물에 쓸려가는 이유다. 조사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4년 동안 총 7,533개의 도로교가 홍수 시에 무너졌는데, 지금도 여전하다.


어제 보도에 따르면, 성남시가 사고 이후에 관내 211개 교량의 정밀안전점검과 시설물 보강을 위해 75억원의 추경을 긴급 편성했고, 관내 양호·보통 등급의 교량 147곳에 대한 정밀점검에만 110여억원, 정밀진단에는 500여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런데 2021년에 관내 20여개 교량의 정밀점검에 고작 1억6000만원을 지출하고 170개소의 교량·육교 점검에 4600여만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결국 돈이 문제다. 우리나라도 노후인프라에 대한 비용이 재정에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처럼 연장 2m 이상인 교량의 점검을 의무화하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부 결함 외에 대부분의 손상에 대해 보수시기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데(서울시 안전총괄실장으로 근무할 때, 내부 방침으로 손상등급별로 보수시기를 정해 의무화한 일이 있다) 이를 의무화하면 재정수요는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 


이 재정수요를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한정된 자원(인력, 재정)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 인프라 선진국들이 도입한 게 자산관리(Asset Management)다. 우리도 이제 이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개별 사고에 대해 원인조사를 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문제를 야기한 법과 시스템, 그리고 관행과 문화까지 잘 살펴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반복되는 사고를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시군구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앞장을 서야 하는데, 도대체 국토교통부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꿀먹은 벙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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