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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일 Jul 18. 2023

한심한 핑퐁질...



온동네가 핑퐁질...



재난예방 및 대응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가 "redundancy(가외성, 여용도)"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누구나 다양한 human error로 인해 예방 및 대응에 실패할 수 있다. 그 개인의 실패가 사회 전체 시스템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게 redundancy다. 


국가하천 제방을 철거하고 교각을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를 지자체나 하천관리청, 공사시행청(행복청)이 모두 방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 책임까지도 서로 핑퐁질이다. 한심한 일이다.


행정청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니까 시공사가 하천관리청의 점용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제방을 철거한 채 멋대로 공사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시공사와 감리사의 판단 실패(?)가 걸러지지 않고 우리 사회의 재난대응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국가하천의 제방은 시설물안전법에 따르면 제2종시설물이다. 법에 따르면 관리주체는 적어도 1년에 2회 정기안전점검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매년 정밀안전점검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이 제방을 제대로 점검했을까? 제방을 무단으로 훼손하고 공사를 진행 중인데 왜 지적이 안 되었을까? 점검을 하면서 이 문제를 짚어봤을까? 이게 첫번째 redundancy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궁금하다.


하천관리청은 교량 등 하천에서 시행되는 공사에 대해 점용허가 권한을 갖고 있다. 공사 시행청(행복청)에서 제방 철거에 대해 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공사를 시행하고 있는데, 교량 공사 도면을 보면 거더와 상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방을 일부라도 손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교량공사 점용허가 과정에서 이를 챙기지 못했다. (정말 못했을까?) 두번 째 구멍이 뚫린 거다.


하천법에 따르면 시도지사 또는 환경부장관은 하천의  안전을 위해 '하천관리원'을 둘 수 있다. 하천관리원은 하천점용허가를 위반한 공사에 대해 공사중지 등의 조치권한까지 갖고 있다. 미호천에는 하천관리원이 지정되지 않았을까? 지정이 되지 않았어도 구멍이고 지정이 되었음에도 점용허가 위반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 역시 구멍이다. 세 번째 그물도 뚫렸다.


환경부장관은 하천법에 따라 하천관리청에 대한 감독권한을 갖고 있다. 이 권한을 행사해서 현장점검을 한번이라도 했는지 살펴봤어야 한다. 이 또한 구멍이 뚫린 것이다.


특히 공사발주청인 행복청에서는 시공사가 공사를 부당하게 시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방기한 책임이 크다. 가장 가까이서 시공사의 판단이 그르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행복청이 참사 이후까지 자기들은 제방고를 100년 빈도의 계획홍수위보다 0.96m 높게 설치해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강변하는 것은 웃기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한 일이다. 하천설계기준에 따르면 여유고는 1.5m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규정을 위반했다고 빼박 증거를 내놓으면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얼마나 하천관리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면 저럴까 싶다. 이건 뚫렸다고 표현하기도 어렵다. 가장 중요한 그물이 그물 기능을 전혀 못했다. 그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자체는 자기 관내의 잠재 위험요소를 모두 파악하여 위험요소별 관리주체들이 그 위험요소를 제대로 관리하는지 챙겨봐야 한다. 지자체의 기본적인 의무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해 챙겨보는 것은 기본적인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지만, 관내에 하천 제방을 무단으로 철거하고 진행되는 공사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해 기본적인 관리조차 안했다는 것은 문제다. 


우리나라 감리시스템은 후진적이다. 세계에도 이런 방식의 감리시스템은 없다. 공사 부실의 가장 큰 이유다. 이들은 그물의 기능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물 역할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이번에 모 건설회사가 부실아파트를 철거하겠다고 하면서 삼성의 애니콜화형식을 거론했지만, 나라가 이런 자세로 국내의 건설생산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앞에서 거론된 이들 중의 누구라도 무단으로 제거된 제방이 우기를 맞아서 제대로 복구되고 관리되고 있는지 현장에 가서 챙겼다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들이 실패할 수 있는 요인들은 많다. 무지, 경험부족, 피로, 부패, 무관심 등등... 그래서 개인의 실패가 전체 시스템의 실패로 나타나지  않도록 만드는 최종 수단 중의 하나가 재난 상황에서 '집단지성'으로 대응하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다. 관련 기관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상황을 같이 판단하고 대응방향을 정하는 강력한 툴을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 놓고 왜 활용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번 같은 경우에 사용하지 않을 거면 이런 시스템을 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챙겨봐야 할 일이다.  


재난 담당 개개인, 각 조직은 위험요인의 관리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확인을 게을리 하거나 떠밀어 핑퐁질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그물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고 그물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재난최고 책임자는 엄중한 경고와 신상필벌을 통해 재난담당자, 재난담당부서가 이렇게 핑퐁질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처구니 없이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는 국민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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